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자살, 국가적 재난에 정부는 응답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송인한
연세대 교수
자살예방행동포럼 정책위원장

그야말로 국가적 재난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매년 약 1만5000명이 자살로 사망하고 있다. 이는 21세기의 대참사로 역사에 기록될 미국 뉴욕 9·11 테러 당시 사망한 약 3000명의 다섯 배에 이르는 숫자다.

 2003년 이래 10여 년 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문구는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해져 버렸다. 자살은 4대 사망 원인이 되었으며 특히 노인자살률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2011년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에 따르면 자살과 관련해 매년 최대 약 5조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복지 사각지대에서 들려온 연이은 자살 소식은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국가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정부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2004년 시작된 제1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은 2009년 제2차 대책으로 이어져 지난해까지 지속됐으나 자살률은 2004년 23.7명에서 2012년 28.1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는 점에서 수치상의 결과는 미흡하다. 현재까지의 자살예방 국가전략을 면밀히 재점검하고 더욱 발전한 3차 대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심리적 부검, 자살시도자 대면조사, 의료 자료 분석 및 의식조사 등 포괄적 측면에서 현황을 분석한 자살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자살 문제 해결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국가 차원의 매우 의미 있는 첫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체계적으로 진행된 최초의 대규모 실태조사이며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실천적 개입을 가능케 하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를 근거로 자살예방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측면이 있다.

 첫째, 자살 위험 요인에 대한 이해가 실제 개입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자살률 감소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핀란드의 경우 심리적 부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1992년 세계 최초로 자살예방 국가전략을 수립한 핀란드가 그 전 단계로 시행했던 것이다. 그 뒤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신보건 조직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지역사회, 그리고 민간단체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자살예방 전략을 실행에 옮겼음이 핵심이다. 우리 역시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어떻게 구체적인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둘째, 이번 조사는 병리적 관점에서 자살의 직접적인 영향 요인에 초점을 맞췄다. 자칫 잘못하면 자살을 야기하는 사회구조적 측면이 간과되고, 정신질환적 요소 등 개인적 원인에만 집중하게 될 수 있다. 또한 자살을 막는 보호 요인이 파악되지 않았기에 자살 예방의 긍정적 자원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자살 문제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사회적인 차원으로 더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난 근거 위에서 이제 자살예방을 위한 출발점에 섰다. 정부가 구체적인 자살예방정책을 제시하고 시행하기에 앞서 구조적으로 시급한 두 가지 사안만 강조하고자 한다.

 먼저 자살 문제에 관한 한 모든 정파와 이념을 넘어 전 국민을 연대시킬 수 있는 대통령 직속 수준의 특별조직이 필요하다. 자살 문제를 국가적 어젠다의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의지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듯이 자살 문제는 복지부·교육부·안전행정부·여성가족부·농림축산식품부·국방부 등 정부 여러 부처가 밀접하게 협력해야 할 만큼 복합적이다. 또한 자살과 관련된 이해당사자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및 자원을 조직화하고 정치권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끌어내야 한다. 강력한 리더십과 조정 능력을 가진 조직 없이 자살예방에 필요한 국가적 자원을 이끌어내고 효율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에 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존재하지만 이는 복지부 산하 기구로서 강력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기에 조직상의 한계가 있다.

 또 하나는 예산의 현실화다. 현재의 예산과 인력은 너무나 열악하다.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 자살예방사업 배정 예산은 보건의료 분야 예산 8조5000억원 중 48억원, 즉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2차 대책 수립 시 직접예산 소요재정 추계액 374억원 중 실제 투입된 비용은 25% 수준에 불과했다. 현재 연간 3000여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비교적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는 일본의 예를 참고할 만하다.

 자살 문제의 모든 책임이 정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실태조사의 결과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정부가 모두 직접 해결할 수도 없다. 하지만 현재의 이 심각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정부는 해결을 위한 노력을 주도해야 한다. 그 의무를 간과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정부로 돌아갈 수 있다.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 우리 사회는 응답해야 한다. 자살은 예방을 위한 노력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자살예방행동포럼 정책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