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6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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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문학은 문학인의 수만한 가짓수가 있더라도 문단은 하나입니다

-김성우

산에 불이 나면 짐승들도 힘을 합쳐 불을 끈다고 했다.하물며 사람이고 더더구나 혼과 생각을 팔아 먹고 사는 문인에 있어서랴. 부당한 권력에 분노하고 불의를 꾸짖는 마음은 인지상정인 것,너요 나요가 있을 까닭이 없다.

지난 2월 28일 시대의 사나운 비바람을 뚫고 걸어왔던 명천(鳴川.이문구)을 떠나보내는 영결식이 있었다.

생전에 문단화합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명천의 뜻을 기려 그동안 너 따로 나 따로 지내던 문학단체들이 공동으로 문인장을 치른 그 자리에서 흩어진 문단을 하나로 모으자는 말이 나왔다.

문단인구가 팽창해서 핵가족화하는 현상을 바로잡자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 갈등과 분열의 고랑을 덮고 한국문학의 대승적 길을 열자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나는 일이 '1994 한국문학인대회'다. 모든 문학단체와 장르를 망라해 원로에서 신인까지 5백명의 문인이 참가한, 문단사에 일찍이 없었던 큰 모임이었다.

소설가 최일남이 "저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문학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고 담론을 나누는 대거사(大擧事)"라고 지적했듯이 구상.조병화.박경리.김남조.이어령.고은.백낙청.김병익.염무웅.이문열 등 참가자 면면이 당대 문학의 맹장들이었다.

서울역에서 '문인열차'를 타고 경주로 가서 2박3일 간 다양하게 진행된 이 행사에서 나는 시낭송회 진행을 맡았고 행사에 앞서 '열린 가슴이여, 하나된 붓이여'라는 축시를 일간지에 발표했었다.

그런데 이 행사는 문인들이 나서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8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인만세'의 무대를 화려하게 올려 '명예시인 1호'칭호를 받았던 김성우가 앞장을 섰다.

독재와 억압의 문학 외의 바람이 심했던 70, 80년대를 거치면서 알게 모르게 패인 문단의 골을 메우고 화합의 물꼬를 트는 '문인만세'를 부르자는 것이 김성우의 생각이었다.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한 가지의 문학을 만들 것이며,거기에서는 가지와 이파리가 서로 따로 영원히 흩어져서 가는 곳을 모르는 그러한 비극을 넘어선 제3의 공간이 되리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어령의 강연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내고자 했던 공동선언은 작은 이견으로 채택하지 못했지만 한 시대 낯가림 하고 반목까지 했던 문학동네 사람들이 가슴 터놓고 웃는 얼굴로 만났던 것은 큰 성과였다.

가지네 잎이네 뿌리네 따질 일이 없다. 저마다 할 일이 있고 가는 길이 바빠서일 뿐이지 하나인 문학, 하나인 문단에서 편 가를 일이 무엇이겠는가.

일제하 카프 시대나 해방공간에 있어서는 이데올로기로 등을 돌렸었고, 독재시대에는 참여.순수로 그랬었고, 또 동리.미당과 같이 좋은 우정이 문인협회 이사장 자리 다툼으로 삐끗했었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것들을 모두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내세울 것 없는 나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도 여기 쯤에서 '문인만세'를 부르며 끝내련다.

<끝>

이근배<재능대 교수.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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