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벤츠 차에「마르크스」가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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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드리드=박중희 특파원】
명색이 지구당 지하조직책이라는데 우선 몸집부터가 그럴듯 하지가않다.
허리통에 군살이 너무 붙었다. 태도도 그렇다. 이쪽은 적어도 상부의 지령을 가지고 위험한 국경을 넘어 일부러 그를 찾아온 처지다. 그런데 잠부터 한잠 자고 보자는 게 무슨 소리냐.
그러고 보면 아까부터 그의 둘레에서 눈에 띄어온 모두가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믿어온 동지「호세」란 놈도 필경 언제부턴가「스페인」이란 소비사회 속의「부르좌지」가 돼 버린 게 뻔하다.
스스로의 의욕을 잃은 말에 이제 채찍질을 해봤자 별 수는 없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지하당 연락 책으로 분한「이브·몽탕」은 담배꽁초를 구둣발로 비벼 보면서 날이 새면「피레네」산맥을 넘어 다시 그의 오랜 망명지인「프랑스」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5, 6년 전쯤인가 거장「브니엘」이 만든 영화『전쟁은 끝났다』의 한 장면이다.
「마드리드·호텔」방에 앉아 하필이면 그 장면이 생각난 것은 그 영화의 얘기가 그럼직도 하겠다고싶어진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건 이런 거였다. 내전이 끝난지 근 40년, 「스페인」극렬 좌파를 좌절과 실의의 구렁이로 몰아온 보다 결정적인 요인은「프랑코」군경의 총칼이었기보다는 그동안 이 나라에도 찾아든 물질적 풍요와 이에 따른 많은 사람들의 이른바「앙브르좌지망」- 소시민화였었다.
굶주림에서 벗어나면서부터 그들을 보다 크게 자극해온 것은 어두운 지하운동에의 의욕보다는 소비와 풍요에의 유혹이었다는 얘기다.
한편의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진실의 한 단면을 그려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전쟁은 끝났다고 했대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오늘날 「마드리드」는「런던」이나「파리」·동경과 이렇다할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적어도 눈에 띄는 물질적 풍요라는 면에서는 한가지 통계만으로도 짐작은 간다. 올해「스페인」국민의1인당소득(개인소득)은 3천「달러」. 최근까지의 속도로 가면 「이탈리아」에는 앞으로 1년, 영국까지도 2년이면 따라간다는 예정이다.
그건「스페인」을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의 눈을 끄는 두드러진 의외의 하나다.
그리고「프랑코」가 죽은 지 11월로 만1년. 「스페인」의 오늘 속에서 보는 각가지 의외들을 푸는 열쇠도 우선은 그런데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벤츠」차에「마르크스」가 운다고 그랬다. 「벤츠」까지는 안가도 자가용차로 상징돼온 풍요라는 그물은 과격의 붉은 깃발을 먹어 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금「스페인」세 가구 중 두 가구가 자가용차를 부린다. 그 자체 대단할 것까지야 없다. 그러나 그걸「호세」가 잠부터 자고 보자고 하게끔 되게된 영문을 가리키는 하나의 예는 된대도 어림없을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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