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교포 어당씨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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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총련의 행패가 거듭되는 것을 보면 무척 기이한 느낌이 든다. 일본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기래 조총련에 의한 불법납치행위가 그토록 자주 백서에 자행되느냐하는 의문이다. 일본경찰이 무능하든지, 아니면 조총련의 범죄행위 수사에 무성의하든지, 그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작년 조총련계 재일 동포들의 모국방문이 실현된 이래 조총련조직에 의한 협박·납치·감금 등 불법행위가 숱하게 자행되고 있음은 다 아는바와 같다.
최근의 대표적 사건만 하더라도 강영희양·진상옥씨 피납 사건과 어당씨의 납치 감금사건을 들 수 있다.
특히 어씨는 조총련중앙위원이자 김일성 대학 명예교수를 지낸 거물급으로 지난15일 조총련을 탈퇴하고 모국을 방문하려고 여권까지 받아놓았다가 은신 중 조총련행동대에 의해 19일 납치되었다. 지금 어씨는 자택에 감금중이라는데 북괴와 조총련은 그를 북송시킬 심산이어서 오는 29일 일본에 기항했다 다음날 떠나는 만경봉호 편으로 북송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김일성 주의와 북괴를 신랄히 비판하고 방한결심을 했었기 때문에 북송될 경우 가혹한 보복을 받을 것은 뻔하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의 생리를 잘 아는 그로서도 북한에 가면 자기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모를 턱이 없다. 따라서 그에게 북한으로 갈 의사가 없을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 북송이 된다면 그것은 그의 의사에 반한 강제북송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놓여있는 상황은 고립무원의 너무나 막막한 처지다. 그의 가족조차도 부인과 딸은 조총련의 골수분자다. 부인은 그를 납치할 때 가세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납치된 이래 집 안팎에서 조총련조직원들과 가족의 감시로 그는 외부와 접촉이 단절된 상태에 놓여있다.
이렇게 지금 조총련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하고 불법적인 수법으로 나오고 있다. 그들도 처음엔『남한에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느니『사업상 좋지 않다』느니 하는 허위선전과 협박·회유 등의 방법을 썼다. 그러다 점점 모국방문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고 그들 내부의 동요가 커지자 지금은 강압·납치·감금 등 불법행위를 드러내놓고 자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조총련의 이 같은 악랄한 행동은 비인도적 행위를 넘어 일본의 국내법에 의해서도 제재를 받아야할 범법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일본의 경찰 등 관계당국의 태도는 미적지근하기 그지없다.
어씨의 경우에는 그가 현재 자택에 있고 본인이나 가족의 신고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로 하면 일본에서는 다른 가족들만 의견이 맞으면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본인의 의사에 반한 납치와 감금이 가능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 논리가 바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의든 타의든 주변사람이 입만 다물면 어느 누구도 강제북송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런 식의 법 운영 논리가 일본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한심하다는 얘기 외에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실제 법 운영이 그렇지 않고 차별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경찰을 비롯한 일본당국의 조총련만행에 대한 소극적 수사태도는 그저 동족간의 귀찮은 문제에 끼여들지 않겠다는 약삭빠르고 안이한 생각에서 비롯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일본당국의 약삭빠른 태도가 조총련의 불법행위가 거듭되는 한 요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명백히 법의 형평운영과 특히 일본정부가「시이나」「메모」를 통해 조총련의 반한 활동을 단속키로 한 약속에 어긋난다 아니할 수 없다. 일본정부의 보다 성의 있는 약속이행을 촉구하면서 우선 어당씨 사건의 처리를 통해 일본정부의 신의성실을 가늠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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