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 성직자들의 반격으로 곤경에 빠진 「바티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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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0년대에 좌파 신부들의 반기로 격변을 겪었던 「가톨릭」이 이번에는 거꾸로 보수파 성직자들의 반격으로 다시 혼란에 빠지고있다.
지난 8월29일 북「프랑스」의 공업도시 「릴」의 체육관에는 「프랑스」보수파 「가톨릭」의 대표적인 「르페브르」주교의 「미사」에 참여하는 6천여 명의 신자로 붐비고 있었다.
『오늘의 「가톨릭」교회는 좌파의 혁명과 결합, 파괴활동을 일삼고 있다. 「로마」교황은 이단자는 아니지만 「가톨릭」교회가 파멸로 떨어지는 것을 방관하고있다』
71세의 「가톨릭」보수파 기수인 「르페브르」주교의 이 같은 강론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세계 6억7천만 「가톨릭」신자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
젊은 시절을 30년 동안이나 「아프리카」선교에 바친 「르페브르」주교가 「바티칸」의 교회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은 「좌파교황」이라는 별명의 「요안」23세가 62년10월 제2공공의회를 주재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바티칸」공 의회는 「가톨릭」의 혁명이라고 할 만한 결정들을 내렸다.
그 첫째가 『「가톨릭」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2천년만에 처음으로 내린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신을 믿는 모든 백성의 것이다』라는 것이 당시의 결정. 따라서 비 「가톨릭」신자라도 「가톨릭」교회는 인류전체를 포옹하게 된 것이다.
둘째로 내린 결론은 신교의 자유. 「가톨릭」신도가 아니라도 신의 구제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결정의 영향으로 「가톨릭」과 연관이 있던 각종 단체가 「바티칸」의 손에서 벗어났다. 「가톨릭」의 강력한 영향아래 있던 기독교노동연맹이 사회당과 신좌익의 민주노동 총 연합으로 탈바꿈 한 것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세째로 중요한 결정은 「라틴」어만 사용되던 「미사」에 각국언어를 사용하도록 허용 한 것. 「아프리카」의 성당에서는 전통적인 「미사」의 의식이 완전히 변화, 큰북을 치면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이같은 교회의 자유화가 결국에는 「가톨릭」을 망친다는 것이 「르페브르」를 비롯한 전통 보수파 신부들의 견해다. 「르페브르」주교는 공의회의 결정을 『신보다 세속과 결탁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따라 71년 「르페브르」주교는 「스위스」의 「에콘」읍에 「순수한 신부만을 양성한다」는 독특한 신학교를 세웠다.
그는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는 인간정신을 교란시키기 때문』에 이들의 저서를 읽지 못하게 하고 전통적인 신부복장·단식·금욕의 엄격한 계율을 신부지망생에게 요구했다. 지난 봄에 이들 중 처음 신부가 탄생하게되자 「바티칸」은 「르페브르」주교에게 이들을 서품하지 말도록 특사를 보냈다. 그러나 「르페브르」주교는 이를 거부, 지난6윌29일 13명의 졸업생에게 신부를 서품했다.
이에 노한 「바티칸」은 「르페브르」주교로부터 사교와 신부의 권한을 박탈, 성당을 이용한 「미사」집전을 하지 못 하도록 했다. 「바티칸」과 「르메브르」주교 개인의 대결이지만 「르페브르」주교의 배후에는 62년 공의회 결정에 불만을 가진 이른바 「통합파」신부들의 지지가 있다. 최근 「프랑스」의 여론 조사는 신자의 25%가 「르페브르」 주둔을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도 제2회 「바티칸」공의회를 「혁명사상의 온상」으로 규정한 보수세력이 계속 「르페브르」의 찬동자금을 보내고있다.
이미 미국 「미시건」주에는 「에콘」신학교의 자매교가 생기고 서독·「이탈리아」에도 같은 성격의 신학교가 준비되고있다. 「르페브르」신부 자신도 『경제위기는 기독교 정치이념으로 극복될 수 있다』면서 최근 「이탈리아」에서 공산주의자가 된 신부들을 강력히 비난하고있다.
이 같은 보수파 성직자들의 반격에 대해 「바티칸」은 좌우파의 사이에서 「샌드위치」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있다. 오는 10월말 「르노르트」에서 열릴 「프랑스」사교 연차총회에서「르페브르」주교문제가 정식 거론될 예정이다. <미 뉴스위크·타임지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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