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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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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무언가는 거둬들이지 않은 채 늘 남겨두기를!

많은 것들이 우리의 정해진 계획 바깥에

남아 있기를,

사과이건 무엇이건 잊혀진 채로 버려두어,

그 향내 맡는 일이 죄가 되지 않도록.

-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안 거둬들인’ 중에서

걸레처럼 쥐어짜며 살려는가 …여백 살리며 남겨 두고 가자

프로스트의 14행 소네트 ‘안 거둬들인(Unharvested)’의 마지막 4행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내가 사람처럼 사는 걸까? 삶을 되돌아보는 이런 성찰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의 경우, 인생의 어떤 고비에서 문득 내 삶의 행색을 돌아보게 한 것은 무슨 웅장한 철학이 아니라 프로스트의 소박한 시 몇 줄이다. 여보게, 계획한 대로 다 이루려 하지 말고 다 쥐어짜지 말게. 다 거둬들이지 말고 조금씩 남겨두게나. 계획대로 다 챙기고 다 쥐어짜면 삶은 너무도 초라해지지 않겠는가. 걸레처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문명의 관계에서도 그럴 것이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이쪽에서의 삶을 끝내고 저쪽으로 건너갔을 때 그곳 관리자들과 나눔 직한 문답의 내용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는 수가 있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이런 질문이 내게 떨어지기를 기대한다. 여보게, 남기면서 살려고 했는가? 다 쓰지 않고 남겨두고 온 것이 있는가? 자네의 모든 것 다 드러내지 않고, 쓸 것 다 쓰지 않고, 말하고 싶은 것 다 말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다 하지 않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