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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선 코앞인데 … 또 펀드 환매 긴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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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펀드 환매 행렬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상승을 짓누르고 있다. 지난달 26일 이후 이달 11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13거래일 연속 순매수 행렬을 이어가며 1960선이던 코스피를 2000선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국내 펀드 투자자들은 힘을 보태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이후 이달 11일까지 매일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12거래일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총 1조3000억원, 하루에 1000억원씩 빠져나간 셈이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2주 연속 순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며 “코스피가 2000선을 돌파하며 강세를 보이자 환매가 큰 폭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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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코스피 지수 2000이 펀드 투자자들의 환매 심리를 자극해온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해의 경우 코스피가 1950선을 넘어서자 6조2000억원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갔다. 2012년엔 8조1800억원으로 그 규모가 더 컸다. 반면 코스피 지수가 1900 아래이면 자금 유입이 활발히 일어났다. 주가가 오르면 추격 매수가 일어나는 게 주식 시장의 불문율인데, 지수가 오르면 펀드에선 오히려 돈이 빠진다는 얘기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2006~2007년엔 코스피가 오르면 펀드에도 자금이 들어왔다. 코스피가 1300 수준에서 2000까지 상승한 이 기간 5조원 규모이던 펀드 유·출입 누적액은 22조원 규모로 늘었다. 코스피 상승이 주춤했던 2008년에도 펀드 유·출입 누적액은 33조원까지 늘었다. 분위기를 바꿔놓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임은혜 삼성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지수가 1000 아래로 급락하면서 이전 투자자들 대부분이 손실을 봤다”며 “이 투자자들이 금융위기 이후 코스피가 회복될 때마다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펀드를 환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피 지수가 2200 턱밑까지 올랐던 2011년 펀드 유·출입 누적액이 1조9000억원 수준으로 뚝 떨어졌던 것 역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코스피 상승기마다 발목을 잡아온 펀드 환매 행렬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 문제에 관해선 전문가들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다. 일각에선 펀드 자금 이탈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2006~2008년 펀드에 유입된 투자금 대부분이 환매를 통해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임은혜 연구원은 “펀드 유·출입 누적액이 0에 수렴하고 있다”며 “차익 실현 수요가 대부분 소진된 만큼 펀드 자금 흐름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규 투자금이 유입될 만한 계기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피 상승 동인이 없으니 펀드 투자가 늘지 않고 펀드 투자가 늘지 않으니 코스피가 오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전체가 하락해도 오르는 종목은 있게 마련. 펀드 시장에도 독야청청하는 펀드가 있다. 롱숏펀드다. 지난해 1조4268억원을 빨아들인 롱숏펀드는 올 1분기에도 9232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롱숏펀드는 주가가 오를 것으로 보이는 주식은 매수(롱)하고, 내릴 것 같은 주식은 공매도(숏)한다. 공매도는 향후 주가 하락이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현재 가격에 팔았다가 하락하면 다시 매수해 둘 사이의 시세차익을 얻는 투자기법이다.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주가가 오를 때도, 하락할 때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롱숏펀드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운용사들도 유명 매니저를 스카우트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롱숏열풍을 불러일으킨 트러스톤자산운용의 김주형 본부장을 영입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지난달 출시한 스마트롱숏펀드엔 한 달 만에 3205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펀드 쏠림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황윤아 제로인 연구원은 “펀드 투자 역시 분산 투자 원칙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특정 펀드로의 쏠림이 심화되면 시장이 왜곡돼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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