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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차 타고, 차도 뽑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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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젊은 여성 셋이 탄 1960년대산(産) 쉐보레 카마로 컨버터블이 ‘BURGERS’란 단어가 크게 적힌 벽과 건물 사이를 속도감 있게 들어간다. 건물을 끼고 반 바퀴 돌자 마주친 건 메뉴와 가격이 적힌 안내간판. 지지직거리는 스피커를 한 명이 능숙하게 고치자 “주문하시겠어요”라는 말이 들린다. “치즈버거 3개, 감자튀김 3인분….” 임무와 관련한 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차를 건물 앞쪽으로 이동하니 건물 안에서 종업원이 음식이 든 노란색 포장을 내민다. 주문부터 음식을 받기까지 한 번도 차에서 내리지 않은 여성들은 “부르릉∼”거친 소리를 내는 승용차를 타고 도로를 다시 질주한다.

 2000년 개봉돼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 코믹 첩보영화 ‘미녀삼총사’의 초반부에 나오는 이 장면, 영화를 보던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에게 낯설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2014년 대한민국에선 더 이상 이국적이지도 당황스럽지도 않은 모습이 됐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접하던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DT) 매장이 국내에서 외식업계는 물론 커피전문점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DT는 소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를 탄 채로 제품을 주문하고 받는 형태의 매장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2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맥도날드가 340여 개 매장 중 137개를 DT형태로 만들었다. 롯데리아는 1000여 개의 매장 중 34개를, 버거킹도 11개의 매장을 이런 형태로 지었다. 2012년부터는 커피전문점들도 진출해 엔제리너스가 광주운암·경주보문 등 9개를, 스타벅스는 8호점까지 열었다. 최근에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도넛업계 최초로 출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소비층을 찾아=DT는 1930년대에 자동차가 이미 일반화됐던 미국에서 탄생했다. 한국에 처음 들어선 것은 1992년. 맥도날드가 업계 최초로 부산 해운대에 소개했다. 이 회사의 우희진 개발팀 상무는 “도입 초기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높은 임대료와 좁은 매장 부지 여건 등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빠르게 활성화된 국내 자동차문화가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92년 당시 500만 대에 불과했던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97년 1000만 대, 2005년에는 1500만 대를 넘어섰다. 지난해 12월에는 1940만 대로 자동차 1대당 인구수는 2.65명이 됐다. 국민 셋 중 한 명은 자동차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DT는 주로 도심에서는 출근 시간이나 바삐 이동하는 동안 식사를 대신할 패스트푸드를 사거나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굳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로 시장을 공략했다. 서울 신월동에서 경기도 광명에 있는 회사로 매일 자가용 출퇴근을 하는 김승진(37)씨는 출근길 DT족(族) 중 한 명이다. 최근 주중 두세 번은 집 근처 신월 인터체인지(IC) 부근의 패스트푸드 매장을 들른다. 이곳은 지난해 말 DT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는 “이전에는 아침을 굶는 일이 많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기 때문에 출근시간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리아의 경우 1997년 세운 1호점인 서울 강동 명일매장의 DT부문 매출 비중은 평일에 38%까지 올라간다.

 아울러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더욱 길어진 주말을 즐기러 떠나는 여행·레저 인구가 증가해 DT의 활성화를 부추겼다. 올 1월 문을 연 스타벅스 경주보문호수점은 한 달에 약 2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수정 점장은 “관광객만을 상대하는 곳인데도 다른 매장의 개장 초기 매출보다 2배 정도 높은 수준”이라고 전했다. 관광객 특성상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오래 주차하기보다는 커피를 사서 바로 행선지로 가려는 생각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적중한 것이다. 스타벅스의 자체 조사 결과 일반형과 DT가 결합된 매장에서는 40% 정도가 차 안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다고 한다. 스타벅스코리아 이석구 대표는 “경주 DT의 경우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상권에서 새로운 소비자를 이끌어낸 사례”라며 “자동차로 이동하는 생활권을 지속적으로 찾아 다양한 형태의 DT매장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성공은 경영학에서는 MECE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의 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MECE는 서로 겹치지 않는 부분들을 모아놓으면 전체가 된다는 의미로 전체를 상호 배타적인 것들로 계속해 나눠보는 방법이다. 햄버거나 커피 소비자를 매장에서 먹는 사람과 사서 다른 곳에서 먹는 사람으로 나누고, 사 가는 사람을 다시 나누다 보니 DT매장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소비자군이 찾아지는 식이다. DT는 햄버거나 커피를 먹고 마시고 싶지만 시간상의 제약이나 주차 문제 등으로 인해 소비를 포기하는 이들을 새로운 소비층으로 끌어들인 마케팅전략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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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IT기술, 전통 건축양식 접목도=신속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DT매장의 특성상 주문에서부터 제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 단축은 기본이다. 일반적으로 주문 후 3분 정도면 된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주문 후 1분30초 안에 제품을 받도록 하는 시스템까지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주문시스템이 등장했다. 스타벅스의 모든 DT매장에서는 42인치 대형 스마트 패널을 통해 차 안의 소비자가 점포 내의 바리스타와 얼굴을 바라보고 대화하며 주문할 수 있다. 국내 IT전문업체와 함께 연구개발한 첨단 화상(Face-to-Face) 주문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들 중 한국에서만 볼 수 있다. 우선 차량이 진입하면 센서가 직원들에게 손님이 온 걸 알려준다. 소비자는 메뉴 검색 기능은 물론 주문내역·결제금액을 화면을 통해 상세히 전달받는다. 각종 카드제휴 상황이나 프로모션 정보가 화면에 제공되고 자기가 주문한 커피가 앞으로 몇 번째에 나오는지도 알 수 있다. 화상주문 시스템을 개발한 스타벅스 코리아 서경종 경영혁신팀장은 “다른 나라 스타벅스 운영자들이 한국에 와서 보고 손꼽는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건물 자체를 한국 전통가옥처럼 꾸며 차를 멈추게 하는 곳도 있다. 2012년 7월 개점한 엔제리너스 경주점은 주변 관광지들과의 조화를 위해 1층 건물에 기와지붕을 얹었다. 이 매점 이용객은 첫해 24.4%에서 지난해 33.3%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땅값이 비싼 악조건을 극복한 독특한 구조도 나타났다. 건물 1층을 기둥만 세우는 건축 양식인 필로티(pilotis)를 응용한 것이다. 서울 신월동 맥도날드 매장에서 처음 시도됐다. 지난해 말 매장을 2층으로 지어 1층의 절반 정도를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하고, 1층의 남은 공간은 주문받는 곳으로 만들었다. 대신 주방과 로비를 2층으로 옮겼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중 유일무이한 모습이다. 이 회사 김기화 이사는 “땅값 비싼 대도시에서 차가 들어올 공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아 구상해냈다”며 “최근에는 중국 지사에서 개발 투자비 절감 차원에서 벤치마킹을 하러 방한하기도 했을 정도로 현지화에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업종과의 시너지를 노리는 전략도 눈에 띈다. 교통 요충지인 경부고속도로 입구 롯데리아 판교점은 식사에서 주유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경부 고속도로 서초IC 진입로에 위치한 맥도날드 서초GS 매장 역시 주유소가 함께 있다. 특히 이 매장들은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나가는 운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맥도날드 신월SK점, 동수원GS점 등은 처음에는 주유소의 한쪽 코너에서 매장을 운영하다가 최근에는 부지를 절반씩 나눠 매장을 확장해 영업하게 됐다. 맥도날드는 SK에너지·GS칼텍스 등 주유소와 30여 개의 협업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버거킹의 경우 현재 운영 중인 11개 DT매장 중 주유소와 함께 있는 곳이 9개나 된다. 이 회사에 따르면 주유소와 연계한 매장의 매출은 일반 매장보다 하루 평균 매출이 20% 이상 높은 추세다.

 협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 양화대교를 지나 경인고속도로 입구에 있는 서울 양평동 SK주유소에는 맥도날드뿐 아니라 아웃도어 네파의 상설 할인매장과 세차장까지 모여 있다. 2012년 문을 연 경기도 용인 마북점은 패션브랜드 유니클로와 함께 열었다. 한국맥도날드 조 엘린저 대표는 “2015년까지 전체 500개 매장의 70%를 신성장동력인 DT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며 “보다 진보된 다양한 형태의 협업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롯데리아 명일DT매장은 엔제리너스 커피, 크리스피크림도넛, 나뚜루팝 아이스크림이 함께 있는 복합매장 형태로 꾸몄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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