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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미세먼지와의 동거, 앞으로 10년은 불가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안개 속의 템스 강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개와 매연이 만나 스모그를 형성, 1952년 런던 스모그 참사를 불렀다. (1904년, 모네 작품, 파리 오르세 미술관)

“자동차 옆의 상점 간판 글씨가 보이지 않고 차들이 서로 들이받혀 뒤엉킨 거리에서 랜턴을 켰지만 눈 가리고 걷는 것 같았다.”

1만2000명의 사망자를 낸 ‘살인 스모그’가 런던을 덮치기 시작한 1952년 12월 4일, 당시 장의사였던 스탠 클립이 기억하는 런던 시가의 모습이다. 추운 날씨로 석탄 난로와 자동차 통행량이 급격히 늘어나고 공기마저 안개와 겹쳐 움직이지 않자 런던은 잿빛 스모그에 갇혔다. 런던 템스 강의 낭만적인 안개가 살인적인 스모그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세계는 공포에 휩싸였다.

영국은 서둘러 대기오염방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대도시의 하늘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60년이 지난 2013년, 이번엔 중국 하얼빈시가 미세먼지에 마비됐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기준을 40배나 초과한 미세먼지로 신호등까지 보이지 않아 모든 고속도로와 공항이 폐쇄되고 2000곳이 넘는 학교가 3일간 휴교했다. 먼 나라 영국에서 일어났던 강 건너 재앙이 이제는 코앞의 중국에서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다.

중국만을 탓할 것도 없다. 경제 규모 13위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대기오염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 그것도 3년 연속이다.

4월의 서울 하늘은 미세먼지·황사·꽃가루로 뿌옇다.

서울 시내에서 남산타워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뿌연 날이 많은 4월이다. 황사와 미세먼지를 ‘지나가는 봄바람’ 정도로 여겨도 괜찮은가? 호흡기 질환자에게 미세먼지는 독약 수준이라고 각종 매체는 수없이 경고한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중국이 모든 석탄보일러를 내버릴 수도, 몽고가 고비사막을 나무로 채울 수도, 한국이 자동차를 반으로 줄일 수도 없다. 앞으로 최소 10년간은 미세먼지와 동거해야 할 판이다. 상한 음식이면 안 먹으면 되지만 공기 속에서 입을 다물고 살 순 없다. 밤낮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봄철 꽃가루처럼 미세먼지가 우리 몸에 기억돼 매년 4월이면 알레르기 ‘펀치’를 먹일 수 있다는 한 달 전의 연구 논문은 걱정스럽다. 이제 목이 한두 번 칼칼한 정도가 아니라 매년 4월의 뿌연 날이면 콧물·비염이 발생하고 천식이 심해질 수 있다.

황사·미세먼지·꽃가루가 날리는 4월이다. 대기와의 전쟁을 준비하자.

봄철에 떠다니는 꽃가루들의 전자현미경 사진. 외부 돌출부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도시의 미세먼지에도 알레르기 유발 단백질이 포함돼 있다.

미세먼지는 1등급 발암물질
미세먼지는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미세먼지가 우심실의 크기를 비정상적으로 늘리고 뇌로 가는 큰 핏줄인 경동맥을 두껍게 해서 심장마비의 원인이 된다는 2014년 미국 흉부학회와 2013년 미국 미시간대 의대 연구 발표는 무섭다. 이제 미세먼지는 단순한 먼지가 아니라 ‘죽음의 먼지’로 통한다. 이런 이유로 2012년 WHO는 미세먼지를 1등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서울 시내를 덮고 있는 뿌연 미세먼지가 1등급 발암물질이라니 저절로 입이 꽉 다물어지고 호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세먼지는 두 가지 방법으로 병을 일으킨다. 하나는 미세먼지에 붙어 있는 중금속·황산화물(SOx)·질소산화물(NOx)이 폐 속의 세포에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폐로 산소가 전달되는 허파꽈리(폐포, 肺胞)의 구멍들을 막아서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 엔진의 공기필터가 먼지로 막히면 엔진이 제대로 돌지 않듯이 부족한 혈중(血中) 산소를 채우기 위해 심장은 더 빨리 뛰면서 심장에 무리가 가고 혈관 내에 염증이 생긴다.

중국 미세먼지의 이동 모습. (위쪽은 2007년 3월 30일, 아래쪽은 31일에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사진)

후진국 병으로 알려진 결핵 환자가 국내에서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결핵 발생률은 OECD 평균의 3배로 압도적인 1위다(2014년).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한국전쟁 당시 퍼진 결핵의 원인균이 몸에 들어온, 이른바 잠복 결핵환자가 많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최근 미국 뉴저지대 의대 연구진은 디젤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인체면역세포를 약화시켜 결핵균 퇴치효과가 떨어진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 연구 결과가 한국의 대기오염이 결핵환자를 급증시켰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3년 연속 대기오염 1위와 결핵 발생률 1위가 서로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확실히 4월의 대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중 꽃가루 알레르기는 꽃가루를 외부의 적(敵)으로 인식·기억했던 우리 몸이 이들을 내보내기 위해 재채기를 하거나 콧물을 흘리는 것, 즉 ‘과민한’ 면역반응이다. 국민 100명 중 5명이 천식환자인데 천식이 있으면 기관지가 좁아져 숨쉬기가 힘들다. 꽃가루와 더불어 미세먼지, 특히 초미세먼지(PM2.5, 직경 2.5㎛ 이하 입자)도 실험동물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2014년 3월 유명 학술지(PLoS)에 실렸다. 미세먼지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것은 조금만 미세먼지를 흡입해도 몸이 전년의 미세먼지를 기억해내 더 심하게 콧물·비염을 일으킨다는 의미다. 초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심장마비뿐 아니라 알레르기를 유발해서 기관지를 비롯한 호흡기 전반에 염증과 암을 일으킨다.

WHO가 미세먼지를 1등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은 이런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위험물인 미세먼지는 왜 생기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모래바람 속 차 꽁무니 따라가는 격
이집트 여행의 백미는 사막 한가운데에서의 일박(一泊)이다. 사막 입구 베두인 마을에서 사막 중심까지의 2시간 차량 이동에 동원되는 8대의 지프차는 최소 20년은 넘었고 창문은 사라진 고물 ‘오픈카’였다. 이것이 낭만이려니 했다. 하지만 상상 속의 고운 자줏빛 모래바람은 ‘낭만에 초쳐먹는 황사’로 돌변했다. 앞서 가는 지프차들에서 불어오는 흙먼지와 시커먼 배기가스를 오픈카에서 두 시간 내내 뒤집어썼던 지인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행을 추천한 필자를 원망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주인공을 집어삼키는 아랍지역의 모래바람. 최근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를 뒤쫓는 두바이 모래폭풍. 모두가 황사의 원조다. 자연이 만든 황사와 사람이 만든 디젤 차량 꽁무니의 ‘검댕’이 합쳐진 것이 바로 ‘중국발 황사’이자 이집트 사막 미세먼지의 정체다. 필자 일행은 아름다운 풍경의 사막에서 최악의 미세먼지를 경험한 셈이다. 중국·내몽골에서 발생한 순수한 흙먼지가 독한 ‘중국발(發) 유해 미세먼지’로 변하는 이유는 황하 북쪽의 허베이(河北) 공업지대 굴뚝의 유해물질을 함께 담고 오기 때문이다. 허베이 공업지대는 세계 10대 대기오염 도시가 7개나 몰려 있는 ‘세계의 공장 굴뚝지역’이다. 여기서 나오는 굴뚝의 검댕이 황사와 만나서 한국을 덮친다. 한국 미세먼지의 약 40%는 중국에서 유래한다. 백령도에서 미세먼지량을 측정하면 ‘중국발’ 바람이 불 때 그 양이 40%가량 늘어난다.

미국 농무부 연구에 따르면 토양에 함유된 미생물의 종류를 조사하면 이 흙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를 알 수 있다. 시신에 묻은 꽃가루를 분석하면 어떤 지역에서 살인(殺人)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세먼지 내의 미생물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면 미세먼지가 중국의 어디에서 발생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에 도달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그만큼 한·중 협력에 의한 미세먼지 개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세먼지는 우리 대기 상태엔 위기 요인이지만 중국 친환경 산업에 투자할 기회다. 일러스트 박정주

중국 미세먼지, 한국엔 위기이자 기회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주부들에겐 괴로운 하루다. 온종일 방안에 갇힌 아이들이 엄마를 들볶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PM 2.5)는 아주 작은 ‘먼지 중의 먼지’다. 쉽게 가라앉지 않고 쉽게 걸러지지도 않는다. 창문을 닫으면 실내에서 처음엔 줄어들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 실내 PM2.5는 오히려 높아진다. 효과적인 대비책은 PM2.5를 잡을 수 있는 초미세 필터인 ‘헤파(HEPA)’ 필터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을 자주 마시거나 실내 습도를 높이는 방법은 기관지에 걸린 먼지를 가래로 빨리 빼내기 위한 방법이다. 이슬비에 옷이 젖는다고 했다. 미세먼지에 장기간 노출되면 폐·심장에 무리가 온다. 미세먼지 경보가 발표되면 그날은 현명한 ‘36계’가 필요하다.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다. 외출을 최대한 줄이고 마스크를 방독면 수준으로 밀착해서 써야 한다. 차량이 다니는 지역을 가능하면 피해서 배기가스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위기는 기회다. 불가피하고 처치 곤란한 한국의 미세먼지가 위기라면 중국의 친환경산업 시장 확대는 기회다. 최근 캐나다 동부 해안도시인 밴쿠버의 아파트 월세가 2배나 올랐다. 원인은 중국 본토에 있었다. 공기 좋은 밴쿠버에 살려는 중국인 부유층들이 집을 사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은 더 이상 ‘잠자는 호랑이’가 아닌 ‘깨어난 사자’라고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말했다. 중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2위다. 100만 달러 부자만 270만 명이 넘는 부자 나라가 된 지 오래다. 중국의 대기오염은 지금은 골치이지만 한국엔 대기 관련 친환경 상품·기술을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규모도 엄청나다. 한국의 한 해 예산에 맞먹는 435조원을 2017년까지 투자할 것이라고 한다. 낡은 차량 600만 대를 폐기하고 베이징시에 20만 대의 전기차를 운행시킨다는 계획이다. 검댕을 내뿜는 재래식 엔진이 아닌 효율이 45%나 향상된 차세대 엔진을 개발하는 최첨단 산업에 돈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반짝 청소’했던 베이징 하늘을 이제는 세계 제1강국의 청정 하늘로 변화시키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의지다. 중국은 한국의 코앞 대륙이자 최대 시장이다. 중국의 굴뚝에서 검댕이 나오지 않아야 한국의 미세먼지가 사라진다. 때마침 중국이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달 3일엔 서울과 베이징시가 미세먼지 개선에 합의했다. 한국은 이미 80년대부터 공장 굴뚝과 차량 배기가스 처리에 효율적인 대기오염 방지 기술을 축적했다. 국내 기술로 중국을 지원해서 ‘미세먼지 out, 위안화(貨) in’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면 좋겠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www.biocnc.com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 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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