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과 수출 학익진 펴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70호 30면

1964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 지 꼭 반세기가 흘렀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는 ‘무역규모 세계 8위’ ‘세계 9번째 무역 1조 달러 돌파’라는 성공 신화를 써왔다. 수출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자 위기 극복의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한 뒤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내수 증대와 일자리 창출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무역과 경제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청년들의 구직 행렬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놓고 세대가 경쟁하는 상황까지 예견되고 있다.

양적 성장에 의존해온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청사진을 제시하기 힘든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양적 확대와 질적 성장이 함께 추진되는 균형 성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조화를 이뤄 목표한 궤적을 향해 빠르게 차고 나가야 한다.

그동안 수출은 대기업이 주도해 왔다. 지난해 우리 수출의 67%를 대기업이 이뤄냈다. 뛰어난 원심력으로 세계시장을 누비며 한국을 무역 강국으로 견인해왔다. 이제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향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 같은 원심력을 뒷받침할 새로운 구심력이 필요해졌다. 중소기업, 특히 수출 중소기업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엔 323만여 개의 중소기업이 있다. 그중 수출 실적이 있는 기업은 8만7000개로 2.7%에 불과하다. 그나마 100만 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은 2만2000개 수준을 맴돌고 있다.

반면 영국은 전체 중소기업의 11%가 수출 기업이다. 독일은 10.9%, 네덜란드는 9.4%에 달한다. 우리보다 훨씬 많은 중소기업들이 세계를 누비며 내수시장을 견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독일 수출을 주도하는 1500개 히든 챔피언의 90%가 중소기업이라고 한다. 이런 수출 중소기업들이 튼튼한 바탕이 됐기에 전 세계를 뒤엎은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부러운 일이다.

고용은 어떤가. 323만 개 국내 중소기업은 1263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전체 기업 종사자의 86.9%다. 유럽연합(EU)의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이 66.7%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고용과 일자리 창출 기능이 얼마나 큰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이 영세한 내수기업에 머물러 있다는 게 문제다. 수출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성장 가능성과 경제적 파급 효과가 크다. 이들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육성이 21세기 균형 잡힌 한국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열어가는 정책적 시발점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쌍두마차를 이뤄 향후 50년의 질적 성장을 이끌 수 있다.

최근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수출 중소기업 10만 개 육성 방안’이 마련됐다. 이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단계별 맞춤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수출 지원기관들도 이젠 빗장을 풀고 적극 나서야 한다.

지원기관과 중소기업 간 협업 관계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일회성에 머물렀던 ‘보여주기 식’ 지원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 안전망을 제공하며 ‘지속 가능한’ 수출 중소기업 지원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지난해 31개 지방자치단체 및 유관기관과 협약을 맺고 수출 초보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육성해가는 ‘글로벌 성장 사다리’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논어에 ‘절문근사(切問近思)’라는 말이 있다. ‘간절히 묻고 현실에 가깝게 생각하라’는 의미다. 수출 중소기업 지원은 결코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전국의 수출 중소기업들을 찾아가 과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기업인들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직접 보고 들어야 한다. 수출 중소기업과 지원기관들 간의 협력 강화를 통해 더욱 강한 ‘학익진(鶴翼陣)’을 다 함께 펼쳐가야 할 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