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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아이들은 장난삼아 개구리를 죽이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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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줄리언 웰즈의 죄
토머스 쿡 지음
한정아 옮김, RHK
328쪽, 1만3800원

여지없었다. 마지막 순간, 토머스 쿡이 펼쳐놓은 결말은 언제나처럼 뭐라 한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과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소설의 주인공 줄리언 웰즈가 ‘인생이란 결국 사투르누스의 기습이다’라고 말했듯, 독자에겐 이 이야기가 ‘사투르누스의 기습’으로 여겨진다.

 로마 신화에서 농업의 신인 사투르누스는 제 자식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저주가 두려워 자식을 잡아먹는다. 목숨을 앗아가는 갑작스러운 사투르누스의 기습처럼, 소설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우연과 사소한 사건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잔인한 삶의 임의성’을 그려낸다.

 역사적이면서 반인류적인 범죄를 다룬 작품을 써온 작가인 줄리언이 50대의 나이에 호수 한가운데서 배를 탄 채 양 팔목을 칼로 긋고 자살한다. 그의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인 필립 앤더스는 줄리언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줄리언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미스터리의 다양한 요소들이 퍼즐 조각처럼 모여서 이리저리 다시 놓이다 보면 각각의 조각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전체 그림이 드러나는 순간이 꼭 있기 마련이다’는 소설 속 한 구절처럼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 줄리언의 죄를 확인하는 과정은 당혹스럽다.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소시민에 불과했던 한 남자와 영웅을 필요로 했던 한 젊은이의 치기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결과는 ‘아이들은 장난삼아 개구리를 죽이지만 개구리는 진짜 죽는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과 겹쳐지며 섬뜩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저지른 실수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람들은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은 사람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는 필립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우연한 만남과 경솔한 말과 별 뜻 없이 나누는 대화가 한 사람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그래서 ‘삶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결과에 모든 것이 달린 복권 같은 것’이라는 부분을 읽을 때는 혹여 살면서 나의 우연한 선택과 사소한 결정이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들지 않았을까라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소설은 정통적인 장르소설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심연과 삶의 비극성을 특유의 시적인 문장으로 써내려가는 쿡의 작품은 새삼 조금은 진지하고, 서두르지 않는 독서의 맛을 느끼게 했다. 수시로 밑줄을 그어 가며 문장을 음미할 만큼.

하현옥 기자

'미스터리의 거장' 토머스 H 쿡

토머스 H 쿡(67)은 서정적인 묘사와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 작품을 선보이며 장르소설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정적이면서도 삶의 본질을 꿰뚫는 시적인 문장과 잔혹하고 어두운 반전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일반 범죄 소설 및 추리 소설과 구별되는 예술성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1980년 첫 번째 장편 『Blood Innocent』의 성공으로 전업작가로 나선 그는 에드거 상과 배리 상·앤서니 상 등 장르소설과 관련한 주요 상을 수상했다. 의심과 오해로 무너져 가는 가족의 이야기인 『붉은 낙엽』(고려원북스)과 치기 어린 소년의 오해와 혈기로 파멸에 이르는 연인을 그리는 『채텀 스쿨 어페어』(RHK) 등 대표작은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예전에 번역됐던 『심문』과 『밤의 기억들』은 절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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