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숙양의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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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비집을 지켜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새끼만 남겨두고 한 쌍이 모두 외출을 하는 일은 없다.
적어도 그 새끼들의 몸집이 보송보송해질 때까지는 꼭 한 마리가 남아서 이들을 보호한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사람이 그 새끼 하나를 꺼내 좀 만져보고 다시 넣어 놓으면 거의 예외 없이 그 새끼는 밖으로 쫓겨난다. 물어서 집밖으로 던지는 것이다. 비정할이만큼 엄격한 육아법이다.
동물원의 「침팬지」는 때때로 잘 싸운다. 성별에 관계없이 폭력이 오고간다. 특히 수놈은 암놈에게 여간 난폭하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새끼를 낳으면 그날부터 온 집안이 조용하다. 아버지「침팬지」는 하루아침에 양순해진다. 그리고는 어미「침팬지」와 함께 헌신적으로 그 아기를 돌본다. 걸음을 가르치고 빠이빠이·뽀뽀도 가르쳐 준다. 이들「침팬지」부부는 아기를 기르는 동안은 몸도 수척해진다. 어미의 경우 10㎏의 체중을 잃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지극한 모성애를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하긴『춘희』의 작가「A·뒤마」도 비슷한 얘기를 한 일이 있다. 『이 지상의 모든 동물에 있어서, 개로부터 인간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숭고한 것이다』-. 가정의,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바로 그 어머니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는 때때로 어두운 단면도 보여준다. 모성애도, 가정의 따뜻함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음 아픈 정경들이 바로 그것이다.
혜숙양의 경우를 보자(어제 본지 사회면). 속초에 사는 한 40대의 어머니는 네 딸을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다섯 살 짜리 철부지 딸도 있었다. 무려 22개월만에 한 순경은 딸들의 눈물겨운 호소를 본지에서 읽고 그 어머니를 찾아냈다. 모녀상봉. 반가와 목이 메는 큰딸 혜숙양(중학생)은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엄마의 말에 따르면 부군은 「하루도 얼굴이 성할 날이 없을 만큼」구타를 했다는 것이다.
모성애와 부부별거. 이 여인은 기꺼이(?)후자의 길을 고집한 것 같다. 신문엔 흐느껴 우는 딸의 얼굴표정이 사진으로 실려있다.
이것은 비록 우리 사회의 어느 일각에 있는 조그만 가정비극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사회 세태일반의 어두운 그림자를 함축하고 있는 것도 같아 우울하다. 그것은 가정의 따뜻함·부모의 정·부부의 윤리·인간의 긍지… 이런 아름다운 인륜의 풍속들이 점차 빛을 잃어가는 것 같은 세정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실로 소중한 것들을 너무도 허술하게 하나씩 하나씩 내버리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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