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흑자 1천3백22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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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상반기의 재정운영은 한마디로 지나치게 견실했다. 그러나 다소 지나치더라도 견실하게 운영했다는 사실자체는 평가받을 만한 일이다. 경제개발을 하려면 재정은 어쩔 수 없이 「의욕적」일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인식 때문에 지금까지 재정은 적자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다소 방만한 운영이 관례처럼 돼있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보면, 올해 상반기 재정의 견조 유지는 드문 경험의 하나다. 보통 상반기에는 세입 쪽의 사정으로 적자운영이 불가피한 때가 많은데, 이번은 오히려 1천3백22억원의 흑자를 남겼다. 그 흑자 폭이 대규모인 점도 특이하지만, 수년내의 고질이던 특계 부문의 적자가 크게 해소된 점이 두드러진다. 이를 지난해 같은 기간의 실적, 예컨대 올해 흑자규모를 능가한 총 재정적자나 특계의 적자누적과 비교하면 큰 변화라 하겠다.
재정이 견실하게 운영되고 흑자 폭이 커지면, 그만큼 총수요가 억제되어 물가안정에 기여할 것은 분명하다. 정부가 기대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재정의 안정기능이었을 것이다. 10%선의 「인플레」억제를 위해 재정과 금융이 동시에 긴축한 셈이다.
상반기 중 통화가 전년 말 대비 6.4% 증가에 그친 것은 이런 노력의 한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안정우선형 재정운용이 실효를 얻기 위해서는 몇 가지 문제들이 먼저 그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연중을 통한 총체적인 재정긴축이 가능해야 한다. 재정규모자체는 방만한 수준을 그대로 유지한 채, 특정분기에만 일시적으로 흑자를 낸다해도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이점 상반기의 운용내용은 문제를 안고 있다. 세입은 순조로운 세수에 힘입어 연간 계획의 48%를 이루었는데, 세출 쪽은 41%밖에 집행되지 않았다. 이는 곧 상반기 지출요인을 대폭 이연 시켰다는 뜻이다. 특히 투융자부문은 올해 계획의 35.6%만 집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흑자재정은 증세와 비투자적 지출의 삭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인데 상반기의 운용은 그 반대다. 즉 소비적 지출의 집행을 이 투융자의 그것을 훨씬 웃돌고 있다. 반면 이연된 투융자가 하반기에 모두 집행될 계획이라면 재정지출이 집중되어 안정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하반기의 재정 철초를 흡수하려면 부득이 금융의 긴축운영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겠으나 현재의 경기국면을 보아 그 마찰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이른바 능력산출고도 늘리면서 「인플레」에 대처한다는 정통적인「폴리시·믹스」의 적용이 매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흑자재정이 금융긴축과 동시에 채택된다는 것은 결국 민간투자와 사회자본을 동시에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세입 쪽은 현 추세대로라면 내국세수에서만 1천억 내지 1천5백억원의 증수가 예상된다는 추계가 나오고 있다. 관세와 전매익금은 물론 방위세에서도 당초예상을 넘는 호조가 계속되고 있다.
이 방대한 증수 분은 최소한의 불가피한 지출증가만 추경에 반영하고 나머지는 차입금상환이나 양곡기금에 전용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특히 그 부담이 과중해지고 있는 근로소득세의 규모를 덜어주는 일은 이번 추경에서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반기 재정운용은 이런 여러 문제들을 충분히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집행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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