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뚱뚱한 남자 vs 날씬한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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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남자가 결혼한 뒤 살찌는 건 남성호르몬이 줄기 때문이란다. 날로 뚱뚱해지는 데 대한 한 남자 선배의 변(辨)이다. 그에 따르면, 남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한지 여부는 얼마나 여자 생각을 많이 하는지로 대략 판단할 수 있는데 결혼 후 다른 여성에게 한눈 안 파는 남자일수록 남성호르몬이 준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최근에 예쁜 여자를 본 기억은 없는데 예쁜 아이들을 본 기억은 많아. 자식이 크고 나선 손주 생각이 먼저 드니 남성호르몬이 더 줄고, 주체할 수 없이 살이 찌는 것 같아.”

 이 얘기를 남자 후배에게 했더니 그 후배 왈(曰), “그게 사실이면 남성 비만이 무척 늘겠는데요. 요즘 여성에게 관심 가지면 위험해진다며 여자 생각을 안 하려고 수양하면서 남성성을 줄이는 데 힘을 쏟는 남자들이 늘고 있으니.”

 웃자는 얘기였는데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남성 비만과 남성호르몬의 불균형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단다. 다만 그게 여성 탓이라는 근거는 없고, 스트레스 탓이 크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지금 우리나라 남성 비만은 어느새 심각한 국면이란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이 12년간 성인 3만7000명을 관찰한 논문을 보면 남성은 갈수록 뚱뚱해지고 있다. 남성 비만율이 10년 새 1.4배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2001년 이후 비만율이 줄고 있다. 섭취열량도 줄고 점점 날씬해지면서 비만으로 인한 발병 위험도 줄고 있다는 것. 한데 남성은 섭취열량 변화도 없고, 운동하는 비율도 줄며 비만도가 높아져 이로 인한 발병 위험이 커지고 있단다.

 왜? 여성들은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적 요구에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그런데 그동안 여자들 사이에 다이어트 열풍이 분 것처럼 남자들 사이에도 몸짱 열풍이 불었다. TV만 켜면 그림 같은 몸매의 남성들이 나와 ‘남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피조물’인지 증명한다.

 한데 이런 장면이 보통 남성들에겐 별 ‘감동’을 못 준 모양이다. 계속 뚱뚱해져 가는 걸 보면. 회식이 강요되는 직장문화 등이 걸림돌로 꼽히지만 10년 전보다 운동을 안 하는 건 왜인지. 혹시 변화에 반감을 드러내는 남성적 특징이 여기서도 한몫하는 건 아닐까. 요즘 여성은 변하는데 남성은 변치 않으려고 해 여기저기서 불협화음이 나는 것도 사실이니. 어쨌든 이 시대 여성은 건강을 향해 변하는데 남성은 반대로 간다. 가뜩이나 남녀 평균수명 차이도 큰데 이마저도 점점 더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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