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최고의 불상 발굴한 농부내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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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해방 후 발굴된 최고의 불상으로 평가되는 금동여래입상을 찾아낸 양평군 강상면 신화리의 이근봉씨(54) 가정은 천재일우의 경사가 났다. 서석산 골짜기의 4마지기 천수답-그것도 34조각의 손바닥만한 층층 논 다랑이를 두셋으로 합답하기 위해 60만원의 빚을 냈는데 논바닥의 돌무더기가 바로 절터 법당자리였다.
초가 3간 집에서 3남1녀와 노모까지 모신 이씨는 논 8백평과 밭 8백평이 전 재산. 산골짜기 도랑물이라도 대기 위하여 감당키 어려운 빚을 내어 합답 공사를 벌였던 것인데 그 마무리작업 중 금 덩어리 문화재가 솟아난 것이다. 보상금이 2백 만원. 이 마을의 옥답 4마지기를 또 살 돈이 마련된 것이다.
이씨 부부는 집을 지을까 땅을 살까 의논 끝에 논을 더 사기로 했다고 활짝 웃었다. 이들 부부는 가슴 부풀어 어쩔 줄 모르고 있었으며 온 마을 사람들도 몰려들어 당시 상황과 보상금 얘기로 열을 올렸다.
23일에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한나절동안 기록영화를 촬영,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발견자인 이씨 부인 신금분 여인(43)에게 영화배우가 됐다고 농담들을 하기도 했다.
불상이 발견된 것은 지난 4월 중순.
1차「불도저」로 논을 밀어낸 후의 정지 작업 중이었다. 신 여인은 점심밥을 논둑에 내려놓고 일군들이 쉬는 참에 괭이로 논바닥을 고르는데 첫 괭이에 금덩이가 번쩍 튀어나왔다. 신 여인은 이 금덩이를 집에 간수하기 두려워 인근 지서에 맡긴 것이 신고의 단서가 됐다.
양평 읍내에서 남쪽으로 강 건너 신화리 일대에는 9개의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이곳 절터는 문헌상도 없는 절터. 지금은 전답과 혹은 초가집들이 들어서 분간키조차 어려웠다. <양평에서 이종석·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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