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어까지 마구 잡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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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치도 안 되는 새끼고기까지 잡아야만 수출목표가 달성된다면 차라리 수산물 수출은 안 하는 편이 낫다.
겨우 2㎝도 못 자란 치어들이 헐값으로, 그것도 일본업자들에게 넘겨지고 있다는 보도(본보27일자참조)는 오늘의 국내 어업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하여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최신장비의 일본어선들이 우리의 전관수역에까지 들어와 어족보존에 큰 위협을 받았던 경험은 아직도 새롭다. 그 일본에 대해 이제는 새끼고기까지 팔아 넘기게 된 현실은 그 경위야 어떻든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면의 바다를 모두 황금어장으로 자랑하던 국내어업이 치어 수출까지 마다 않게 된 현실은 곧 어족자원이 그만큼 고갈되었음을 의미한다. 농수산당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어자원 보호를 강조해왔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라는 표어는 이미 10여년 전에 내걸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수산자원보호를 위한 법령까지 만들어지고 수출전략 어종의 새끼는 못 잡게 한 지도 오래되었다.
이런 다양한 행정노력에도 불구하고 불법적인 어로가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바다에 그만큼 잡을 고기가 줄었다는 뜻이다. 도시소비지에 반입되는 생선이나 전복을 위시한 패조류의 크기가 이제는 2∼3㎝에 불과한 것으로 줄어들고 값도 부쩍 오르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그동안 활선어를 비롯해서 수산물 수출이 크게 늘어난 점도 지나칠 수는 없다.
생산과 소비가 다같이 늘어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생산의 증가속도는 이전에 비해 떨어진다. 설사 지금은 일정율의 증산이 지속된다 해도 장기적인 전망에서 낙관하기에는 너무도 불안한 요소가 많다.
큰 기대를 모아왔던 원양어업이 급증하는 연안국의 보호정책과 유류난 때문에 큰 불경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주력해온 양식어업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공해 때문에 수익의 안정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당분간은 연·근해어업의 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으며, 어민의 생계수단을 제공하는 주원인이 될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적 요인은 한결같이 어족보존의 긴요성을 더욱 높이는 추세에 있다. 때문에 수출을 빙자한 이 같은 불법적인 어로는 엄중히 단속되고 감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해안의 치어잡이가 영세어민의 불가피한 생계유지 수단이라는 데서 문제는 자못 심각하다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불법인줄 알면서도 일인들이 건네준 몇 만원의 전도금 때문에 새끼까지 잡는다면 그 책임은 어민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일인의 상혼이나 국내수출업자의 무분별을 탓하기 전에 우산 국내어민들의 생업보호에 소홀함이 없었는지를 먼저 되새기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각종 명분의 어민보호기구나 행정조직이 과연 명실상부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지 또는 각종 자금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심각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청구권협력의 상당한 비중이 어업근대화와 어민소득사업에 투입되었지만 우리의 어업은 아직도 더 보호되고 투자되어야할 여지를 남기고 있다. 청구권협력의 유산이 결국은 『북을 얻고 고기를 잃는』것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업투자와 자원보존에의 노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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