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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고은의 호기심 취재파일 ②] 한 달에 100만 원 들여 하는 연애수업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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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강남 소재의 한 연애학원에서 강습을 받는 20대 후반의 여성. 코치들은 “연애수업은 본인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혹여 이런 대답이 나오면 나는 다음 얘기를 이어갈 수 있겠지. 아아, 윌 스미스가 연애코치해주는 거요? 그거 현실에도 있는 거 아세요? <미스터 히치>가 개봉된 2005년, 이미 미국에서는 데이트 코치가 존재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에도 연애학원이 등장했다는 뉴스가 났다. ‘아니, 연애를 무슨 돈 주고 배워?’ 하고 놀랐던 것도 이미 한참 전의 일이다. 2007년이 시작이던가.

2010년 이후로 연애전문을 내세운 학원들이 번식했고, 2014년 이제는 연애학원의 세부 분야가 더 다양하다. 결과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갈래가 나뉘는데 단지 ‘연애’라기보다는 데이트, 헌팅, 원나잇스탠드 등 학원마다 구체적인 목표를 내건 곳도 있다. 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픽업아티스트’가 유행처럼 등장하는가 하면, 그 픽업아티스트의 수업을 들은 이들의 체험담도 인터넷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스킨십, 섹스 등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는 수업의 경우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늘 따라다닌다. 인터넷에 떠돌던 한 스킨십 수업의 진도표를 보면 상대의 속옷을 어떻게 벗겨야 하는지 같은 것도 등장한다. 물론 모든 연애학원이 섹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분석이나 치료와 연계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곳도 있고, 데이트매너를 가르치는 곳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요즘 가장 핫한 건 재회전문학원이라고 한다. 영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떠올리면 될까.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주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헤어진 애인이나 배우자와 다시 만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특정대상이 정해져 있고, 그 상대를 붙잡으려는 마음이 절실한 사람들은 기꺼이 재회 전문 연애학원을 찾아간다.

나는 강남역 부근에 위치한 연애학원 한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2007년 국내최초란 수식을 달고 등장했던 ‘카르마(KARMA)’다. 이곳은 ‘나답게 살자, 러브트리’ 라는 모토로보다 확장된 의미의 라이프코칭을 하고 있다. 김은영 헤드코치는 연애 역시 결국은 자기 자신과 당당하게 만나야 시작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스스로와 만나는 법을 터득하도록 돕는다. 왜 재회나 헌팅, 스킨십을 다루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걸 목적으로 하는 건 연애의 본질과 좀 동떨어진 것이어서 다루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는 정말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길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처음 이 학원이 강남역 부근에 문을 열었을 때, 찾아온 사람들의 절반 이상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전화를 걸어오거나 직접 찾아오고도 “정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놀라던 사람들. 친구와 술 먹고 내기를 걸어서 오거나,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찾아온 이도 많다.

그러나 요즘 이 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많이 다르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많은 업체를 비교한 후 발걸음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연애 전문가가 하나의 직업일 수 있다는 걸 안다. 연애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존재하고, 연애코칭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장 많은 고객층은 30대 남성. 그러나 40대 이상이나 20대도 적지 않다. 여성 고객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고객이 찾아오면 일단 컨설턴트와 1대 1 상담을 거치게 되는데, 상담 후에 수업에 등록하는 비율은 80% 정도다. 수업은 1대 1로 진행되다 보니 학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과외에 가깝다. 학교나 기업 등 단체를 대상으로 한 연애강의도 한다. 요즘에는 이렇게 단체에서 연애특강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원 수업료는 주1∼2회 기준으로 2개월에 200만 원. 작지 않은 금액이지만 300만 원을 내고 3개월 정도 수업을 듣는 이도 많단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1회 상담료가 10만 원인데, 그 상담을 세 번 연속으로 받은 사람도 있었다. 상담을 통해서도 자신의 연애 고민이 조금 덜어지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최근에 연애학원에 등록한 30대 여성 A씨는 상담을 받으러 갔다가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신붓감 1위라는 교사라는 직업에, 빠지지 않는 외모, 대인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어본 적도 없는데 이런 자신이 왜 연애를 못해서 학원까지 다녀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녀의 사연이 그리 안타깝게 여겨지지 않는 건 내 주변에만 해도 그런 사례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 괜찮은 여자가 많은데, 정작 그들에게 어울릴 만한 근사한 남자는 부족하다고 말이다. 남자들은 거꾸로 괜찮은 여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늘 기근에 시달리는 이유는 뭘까. 결국 동선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김은영 코치는 일단 연애를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하죠. 집에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운명의 상대가 알아서 찾아와주진 않잖아요.”

사랑은 변화의 파노라마… 일단 움직여라

“그런데 거의 대부분 늘 동선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자들은 새로운 사람을 잘만 만나던데, 실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학교나 집, 혹은 직장과 집,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그래서 보통 동호회나 학원과 같은 프로그램을 시작하길 권합니다. 중요한 건 개개인의 성향과 관심사예요, 누군가를 만나겠다고 전혀 흥미도 없는 집단에 들어가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니까요. 요리학원이라든지 댄스동호회의 교육프로그램, 골프클럽, 영어스터디 같은 걸 예로 들 수 있겠죠. 고정적이고 주기적으로 계속 타인과 얼굴을 보게 되는 그런 형태잖아요. 그런 활동마저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휴대폰 앱을 이용한 소셜데이팅이라도 하라고 말씀드리죠. 주로 싱글 남녀가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해두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어울리는 상대방을 매일 소개해주는 앱이에요.”

30대 여성 B씨는 홍대와 강남 모두에 거점을 둔 댄스동호회에 등록했다. 물론 연애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춤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꼭 춤에 관심이 있는 사람만 모인 건 아닌 것도 같았다. 동호회 안에서 첫 수업이 시작되던 날,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호회는 결혼 성사율이 높은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9년 동안 모두 여덟 커플이 결혼했어요. 춤을 추다 보면 사랑도 싹터요.”

동호회 회장은 그렇게 말했다. 9년 동안 여덟 커플이 결혼을 했다면 9년 동안 깨진 커플은 얼마나 될까? A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A는 그 동호회가 정말 많은 커플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연애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춤은 그녀의 취미로 건재하다. 이런 게 동호회의 매력이다.

이제 곧 서른을 앞둔 B는 최근 교회를 옮겼다. 이왕이면 또래가 많은 곳을 선택하고 싶어서 집에서 두 시간 거리의 교회를 선택했다. 규모도 크고 분기마다 청년들을 위해 연애와 결혼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하는 곳이었다. 교회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짝지어주는 매칭 프로그램을 갖기도 한다. 단 교회 다니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 보니 항상 남자 수에 여자를 맞춰야 해 안타깝다고.

“그 세미나가 있는 주에는 출석률이 확 높아져요.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배우는 게 많거든요.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아무나 만날 수 없는데 현명하게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는 안목도 기르게 되고요. 그 프로그램 때문에 이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B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오래전 과외수업으로 만났던 한 고등학생이 떠올랐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그녀는 여대생이었던 내게 연애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중에 하나가 어디에 있는 무슨 교회에 다니라는 거였다.

“일요일이 되면 거기 주차장에 외제차가 쫙 깔린다니까요? 돈 있는 유학파가 다 모인대요. 선생님, 미래를 생각해야 해요, 미래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니까요.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죠! 전 대학만 가면 이 동네는 뜰 거예요, 운동도 미용실도 산책도 잘나가는 동네에서 해야지!” “지금 그 오빠는 어쩌고?” “에이, 선생님도. 그건 연습이죠. 사랑도 해봐야 잘 한다고요!”

문제집 앞에서는 극도로 소심해지는 그 아이의 활달한 조언이 내겐 좀 쇼킹했는데, 그 아이의 말 속에는 사실 연애에 관한 정답들이 초코칩처럼 박혀 있었다. 인연은 만들어간다는 것, 사랑도 해봐야 잘 한다는 것!

돈을 내고 ‘소설 쓰기’를 배우러 온 대학생들에게 물었다. 연애학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부분은 재미있긴 하나 본인들과는 상관없는 정보라는 표정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연애를 못해서 고민인 경우도 이해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연애를 해도 고민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446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별과 학년을 막론하고 가장 큰 관심사로 ‘돈(30.7%)’을 꼽았다. 그 다음이 ‘장학금(10.2%)’, ‘연애 및 이성관계(8.5%)’ 순이었다. 참고로 꼴찌는 ‘정체성, 자아성찰(2.2%)’이 차지했다. 새해 소망을 묻는 질문에서도 연애는 4위를 차지했다. 1위는 당연히 취업! 연애는 로또 당첨과 A학점의 뒤를 이었다.

윤고은

온라인 중앙일보·월간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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