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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윤고은의 호기심 취재파일 ①] 요즘 젊은이들이 꿈꾸는 '연애의 기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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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연애의 기술을 익히지 못한 젊은이들을 상대로 ‘연애 코칭’비즈니스가 번창한다. 결과에 집착하는 연애는 더 이상 연애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헌팅학원에서 재회전문학원까지 각종 연애술 가르치는 비즈니스 활황… 그러나 결국 사랑을 체화해서 싹 틔우는 이는 자기자신

“취업이니 연애니 다 똑같아요, 다 한통속이니까 알아서 들어요, 나는 이 꼴인데 친구들은 하나씩 거래처를 잡고, 2년 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애들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애들이 줄어들고 있다니까요, 다들 계약직이라도 된다 그거죠, 2년 이상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든가, 아니면 자르든가, 둘 중의 하나로 결판이 나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필자의 소설 <해마, 날다>에서 술에 취한 여자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여자가 하는 말은 취업의 어려움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이 여자는 직업이 있다. 여자가 고민하는 것은 직장이 아니라 연애다. 거래처란 곧 사귀는 누군가를 의미하는 거고,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는 건 결혼을 의미한다.

이 여자는 2년간 사귀던 남자에게서 어떤 결말도 보일 기미가 없자, 결국 제 발로 ‘사표’를 쓰고 나왔다. 헤어졌다는 말이다. 이제 여자는 서류전형을 몇 군데 넣어두었고, 이번 주 주말부터 줄창 면접을 보기로 했다. 면접은 소개팅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생각해보면 취업과 연애의 과정은 상당히 닮아 있다. 좋은 연인도 결국 좋은 직장의 요건과 비슷하지 않은가. 안정감, 호감, 가능성, 안목, 책임감, 존중 기타 등등 많은 덕목이 겹친다.

실업을 겪은 이들에게 몇 달간 실업급여가 나오는 것, 이상할 것 없는 얘기다. 그렇다면 실연을 겪은 이들에게 몇 달간 실연급여가 나오는 것은 어떨까? 돈이 아니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사랑으로 다친 이들이 몇 달간, 자립을 위한 보호막이 필요하다는데 야박하게 굴 사람들이 있겠는가. 문제는 그 보호막을 누가 만들어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국가가 좀 해주면 안 돼? 국민이 힘들다는데!” 이별로 몸살을 앓았던 한 친구의 주장이다. 친구는 국가아니면 유엔에라도 실연급여를 청구할 기세다. 누구에게나 이별이라는 행위는 억울하다.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한 것처럼 초라해진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이지, 따져보다가는 급기야 헤어진 상대를 악덕업주나 사기꾼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직장상사? 혹은 보험회사? 막 꽃다운 연애를 시작한 친구들? 대체 누구한테 이 허탈감의 보상을 청구해야 하나.

연애에 ‘소질’ 같은 것은 없다

주변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 ‘실연급여’ 제공은 결국 일시적인 것이다. 술 한잔 사주거나,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소개팅을 주선하거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이상 또 뭐가 있단 말인가. 친구는 한동안 <스님의 주례사>를 읽으며 마음을 비우려 애썼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내가 연애에 소질이 없는 것 같아. 자꾸 반복해도 실패하는 걸 보면 말이야. 안 그러니?”

연애에 소질이 없다는 말은 좀 슬프지만, 연애에 소질이 있다는 말도 생각해보면 칭찬인지 잘 모르겠다. 연애와 소질은 나란히 늘어놓기에 좀 어울리지 않는 조합 아닐까.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연애사에는 조언하는 자와 조언을 듣는 자, 그리고 조언을 듣고도 잘 못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주변에 연애코치가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지 않던가.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마이클럽’과 같은 인터넷 공간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 안에서 연애부터 결혼생활까지 수많은 고민을 주고받던 ‘선영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가끔은 여성들의 솔직한 답이 궁금하다며 끼어드는 남성들도 보였다. 지금도 ‘레몬테라스’와 같은 인터넷 카페는 모르는 여성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이 오가는 곳이다.

지식의 출처란? 모든 개개인의 경험담과 생각들이다. 물론 여성들만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떠들고 노는 건 아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한때 ‘지식in’과 같은 포털사이트의 열린 공간에 연애상담을 하는 이들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지만, 고백하자면 내 연애사에서도 ‘인터넷 검색’은 큰 몫을 했다.

책 또한 오래된 연애코치다. 독서는 좀 고전적인 접근방법이랄까.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은 연애를 일단 ‘글로’ 먼저 배우려 한다. 그게 아니고서야 서점가에 저렇게 많은 연애 관련 서적이 있을 리 있겠나? 한국에서 1993년에 출간되었던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이미 전설 속의 바이블일 뿐, 요즘 십대들은 그 책이 정말 외계행성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연애관련 서적들은 훨씬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 연령대별로 상황별로 데이트코스별로 읽을 만한 책도 세분화되었다. 그렇게 맞춤형의 연애서적들이 있는가 하면 좀 더 우회적으로 연애능력에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책도 있다. 세월을 고스란히 통과해온 고전들 말인데, 이를테면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멕 라이언이 200번 이상 읽었다고 고백한 <오만과 편견>같은 책을 예로 들 수 있다.

결국 그 영화 속에서 멕 라이언은 <오만과 편견>의 결말을 따라가지 않던가. 친절하게도 요즘 서점에는 고전소설들의 연애 스타일을 분석해놓은 책도 나와 있다. 최근에 발견한 책은 <제인 오스틴의 연애수업>. <오만과 편견>뿐 아니라 <위대한 개츠비>라든지 <위대한 유산> 같은 31편의 고전소설 속의 연애사를 분석한 책이다.

영화를 통해서도 연애를 배운다. 타인의 연애를 보는 동안 우리의 연애는 무탈한지 반성도 하게 되고, 공감하기도 하고, 영화와 다른 현실에 더 상처받기도 한다. 나는 종종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애가 무엇이었는지 묻기를 즐긴다. 정답이나 오답이 따로 있을 리 없는 질문, 설령 내가 모르는 영화가 언급되더라도 나쁠 것 없는 그런 질문일뿐더러 영화 속 연애는 어떻게든 현실의 우리에게 쓸만한 대화의 재료가 되니까.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사랑 영화 말이죠. “미스터 히치.”

윤고은
온라인 중앙일보·월간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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