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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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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종교의 세계는 누구나 쉽게 터득할 수 없다. 모든 교설은 참으로 심원해서 한마디로 설명할 수도 없고 잠시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종교의 힘만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종목은 바로 그 인간에게 삶의 이유와 궁극의 목적을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종교의 힘이며 신비다.
『왜 사느냐』의 질문에 언제나 한결같은 해답을 던져주는 것이 종교다. 그 해답은 성별도, 인종도, 계급도 그리고 역사까지도 초월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험난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종교의 힘만은 언제나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가까이 불교의 경우만 보아도 이미 1천6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불교의 바탕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종교적인 심성을 아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불교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정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각을 불교의 경전은 연기 논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연기설을 상의설이라고도 한다. 이 누리의 모든 것은 그 어느 한가지도 고립·독존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일절의 모든 존재는 서로 인연을 갖고 서로 의지하고 돕는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너」와 「나」는 떨어져 있는 관계가 아니고 「하나」라고 불교에선 가르친다. 「자타일여」나 「피차동체」와 같은 말은 여기에서 나온 생각이다. 불교의 인생관이나 세계관도 바로 이런 사상의 연장이다.
부처님도 일찍이 참다운 삶을 사는 길은 자기와 자기의 아집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이기주의나 탐욕주의와 같은 것은 불교의 교리와는 거리가 멀다.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의미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귀중하다. 모든 사람에게 삶의 의의를 깨우쳐 주는 것은 그만큼 이 세상을 진지하게 만들 것이다. 삶의 의의뿐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를 가르쳐 주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불교의 바탕을 이루는 정각의 사상은 바로 그 문제에 열쇠를 던져주고 있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나와 이웃, 너와 나,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 마음과 마음을 기대고 사는 관계 속에 있다.
이런 원리는 한 인간의 생존뿐 아니라 한 사회, 한 국가의 생존에서도 진리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보내며 새삼 음미해본 불교의 가르침이다.

<정정>=4일 자본난 2단5행 중 「76년」은 「7년」의 잘못이옵기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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