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동강난 시신, 미사일 파편 엉켜 참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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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바그다드 북부의 알샤읍 지역.

'쿠쿵-'하는 굉음과 함께 미사일 파편에 찢겨나간 행인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상점과 사무실이 즐비해 평소 행인들의 왕래가 잦은 이곳에 이날 오전 미국.영국 연합군이 쏜 미사일 두 발이 내리꽂혔다.

폭격 직후 알샤읍 중심부에선 행인.상인들과 건물에 쌓아둔 상품.집기들이 수십m 밖으로 튕겨져 나갔고, 검붉은 화염이 상가 건물을 휘감고 타올랐다. 이날 폭격으로 민간인 15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악몽 같은 순간이 지난 뒤 용케 살아남은 시민 수백명은 희생자 주변에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군사시설이 아닌 상가 밀집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는 사실에 격분하며 치를 떨었다.

격앙된 시민들은 숨진 이들의 신발과 옷가지를 집어들고 "부시 타도, 후세인 만세"라고 구호를 외쳤고, 처참한 광경에 얼굴을 감싸쥔 일부 시민들은 "하람(있을 수 없는 일), 하람-"을 되풀이했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시민 히샴 마드로울은 "불탄 차량 한대엔 어린이 세 명을 포함한 일가족이 타고 있었다"며 "우리는 죄를 짓지 않았다. 도대체 부시가 원하는 게 뭐냐"고 울부짖었다.

폭격으로 움푹 파인 구덩이 주변을 수습하던 한 이라크 군인은 흙속에 묻힌 핏기없는 살덩어리를 가리키며 "이 희생자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손은 아직 여기에 있다"고 울먹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영국 BBC방송의 라게 오마르 특파원은 "피폭된 곳 주변엔 군사시설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장 가까운 군사 목표물은 4백m나 떨어진 민방위사령부 정도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군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주요 군사 목표물만을 최첨단무기로 정밀 조준 폭격하고 시민들의 안전은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바그다드 시민들도 개전 이후 주로 대통령궁과 정부청사.군사시설 등을 겨냥해 공습이 이뤄졌기 때문에 이런 시설만 피해 다니면 목숨은 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차량들이 오가고, 시장의 상점들이 문을 열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알샤읍 폭격 소식이 퍼지면서 이젠 공포감이 바그다드를 지배하고 있다. 폭격 직후 차량 소통도 줄기 시작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전했다.

시민 신마리는 "어린이.여자.남자…. 누구도 미사일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지 못했다"며 "차 안과 건물 안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쓰러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빅토리아 클라크 국방부 대변인은 26일 기자회견에서 "이날 바그다드 공습은 이라크의 9개 지대지 미사일과 미사일 발사대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이라크 측이 시민들을 '인간방패'로 삼아 미사일 대부분을 주택가 인근에 배치해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비난했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알샤읍 거리가 미군의 미사일이 아닌 이라크군이 발사한 요격 미사일에 맞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준술 기자,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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