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신임 유엔 대사에 미국 난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다시 경색됐다. 이란 정부가 1979년 테헤란 미국 대사관 점거사건에 가담한 전력의 하미드 아부탈레비(57)를 신임 유엔 주재 대사로 내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미국 정부는 이란의 결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엔본부는 뉴욕에 있어 외교관 출입국을 위해선 미국 비자가 필요하다. 아부탈레비는 94년 이란대표단으로 유엔을 방문한 적이 있지만 상주 외교관 자격으로 비자와 면책 특권을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은 2일(현지시간) “심각한 문젯거리가 될 것”이라며 “미국이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란 정부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유엔본부가 자리한 국가로서의 의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자 발급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또 이 문제와 핵 감축을 목표로 한 이란과의 협상은 별개 사안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과 이란은 조만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의회는 한층 강경하다. 여야는 오랜만에 한목소리로 아부탈레비의 비자 발급을 반대하고 있다. 테드 크루즈(공화·텍사스) 상원의원은 이날 “그는 공인된 테러리스트”라고 말했다. 척 슈머(민주·뉴욕) 상원의원도 “인질로 붙잡혔던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뺨을 때리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이란도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란의 메디 바즈파스 의원은 “우리가 고른 유엔 대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최신 조롱”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모처럼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망치려는 급진 세력의 공작이라는 음모론도 나온다.

 아부탈레비 내정자는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 과격파 학생 단체 ‘이맘의 노선을 따르는 무슬림학생연맹’의 일원이었던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팔레비 전 이란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 사건으로 52명의 미국인이 대사관에 붙잡힌 채 444일을 보냈다. 미국과 이란은 이 사건으로 외교관계를 끊었다. 아부탈레비는 지난달 한 인터뷰에선 “몇 차례 통역을 했을 뿐 주도적인 역할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