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속에 뒤엉킨「탈출의 발버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춘천=임시취재반】참사는 또다시 마의늪 춘천호에서 빚어졌다. 진눈깨비속을 달리던 연휴주말의 귀향객들과 귀대길의 장병들은 순식간에 물속으로 곤두박질하는「버스」속에서 필사의 탈출노력도 보람없이 깡그리 목숨을 앗겼다. 사고소식을 듣고 몰려든 가족들은 안타까움과 초조속에 현장을 지켜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샜지만 철야작업끝에 몰골을 드러낸「버스」속에는 익사자들의 엉켜진 모습들만 처참했다. 사고현장은 대형교통사고가 3번이나 잇달아 일어났던 죽음의 길목이었으나「가드레일」조차 마련되지않은 사고무방비지대로 방치돼왔었다.

<사고원인>
경찰은 사고「버스」의「핸들」축대와 앞바퀴를 잇는「핸들·드러그·링」이 빠져있는것을 밝혀내고 사고원인이 과속과 정비불량으로 인한 「핸들」고장으로 일단 추정하고있다.
경찰은 사고「버스」에 추월당해 1분간격으로 뒤따라가던 강원1바1648호「택시」운전사 김만섭씨(24)의 증언에 따라 굴곡이심한 길을 과속으로 달리던「버스」가 「핸들」고장이 나면서 순간적으로 추락한것으로 보고있다.
김씨는 뒤따라 오던 「버스」가 추월한뒤 1분쯤지나자 갑자기 보이지 않아 차를 세우고 물속을 내려다보니 물속에가라앉은 「버스」가 보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길로 급히 차를몰아 화천으로 달려가 경찰에 신고했다.
사고난 춘천∼화천간 국도는 모두 포장이 안된데다 해빙기를 맞아 곳곳에 웅덩이가 패어있었다.
사고당일 현장의 기상은 안개가 약간낀가운데 눈·비가 오락가락 했으며「버스」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운행할 정도로 어둠이깔려 있었다.
사고「버스」는 지난해 7월31일 제작, 1월26일 갑종정비검사를 마친 비교적 신형차다.

<인양작업>
구조작업은사고후 2시간만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찰은 신고를받은 즉시 구조대와 「크레인」차등을 동원,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잠수장비가 없어 「보트」로 「버스」가 잠긴곳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29일상오1시30분쯤 인천에서 잠수부윤화식씨(27·인천시남구숭의동342)등 4명이 도착했으나 작업비 관계로 1시간이나 대책본부측과 승강이를 벌이다 상오3시15분에야 잠수작업에나섰다.
잠수부들은 소방차와「크레인」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추는가운데 2시간15분동안 5차례나 물속으로 뛰어들어 깊이7m의 물속에 잠긴 차체에「로프」를 감으려했다.
그러나 처음2번은 감았던「로프」가 벗겨지고 3번째는 「크레인」차가 기우뚱거려 실패했으며 4번째는 「크레인」차와 「로프」의 연결부분이 끊어져 또 다시 실패했다. 상오5시30분 32구의 시체를 담은 사고「버스」가2대의「크레인」차에 끌려 차체뒷부분부터를 밖으로 을씨년스런 모습을드러냈다.
구조반은 횃불을 들고 차체를 물밖으로 3분의1쯤 끌어올린뒤 주민 이영천씨(40·화천면하1리)등 3명을 뒤쪽유리창을깨고 들여 보내 맨먼저 김순구군(20·중앙대3년)의 시체를 끌어냈다.

<사고현장>
32명의 목숨을 앗아간 춘천호반은 구조작업이 계속되는동안 자동차의「헤들라이트」와 30여개의 횃불로불야성을이뤘다.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30여명의 유족들이 밤새통곡하는 가운데 50여명의 주민들까지 몰려나와 군경이이들의 접근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
「버스」가 물위로 모습을 나타내자 「버스」에탄 딸을 찾아나섰던 이봉준씨(67·화천면아1리)는 부인과함께 진흙바닥에 뒹굴며 몸부림을 쳤다.
「버스」속에는 승객들이 서로 먼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친듯 앞뒤유리창쪽에 무더기로 몰려 엉켜있었다.
사망자 가운데 길병두군(20)은 차체에 부딪친듯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고있었으나 나머지 대부분은 외상이 거의 없었다. 이원자씨(36)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기도한듯 손가방을 움켜쥔채 상반신을 깨어진 앞유리창으로 반쯤 내민채 숨져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