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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는 '유권자로부터 가장 먼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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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정치외교학

지방 선거는 흔히 ‘유권자와 가장 가까운 선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6·4 지방선거는 ‘유권자로부터 가장 먼 선거’처럼 보인다. 지역정치의 장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권력 경쟁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와 가까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고만 있는 느낌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는 정당정치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우리의 정당정치·의회정치는 거의 기능 불능 상태다. 물론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선진국들도 겪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정당정치가 더 이상 분명한 대립 축을 토대로 활동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좌우를 폭넓게 아우르는 이른바 포괄정당(catch-all party)화의 흐름이다. 색깔이 분명한 명품 정당이 아니라 여러 것을 다 취급하는 백화점 정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당정치의 혼미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포괄정당은 민의를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중요한 이슈에 대한 유권자의 결집을 어렵게 하는 단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정당 귀속감이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는 무당파층의 증가다. 자연 유권자들은 정당보다는 후보자 개인의 매력이나 포퓰리즘적 호소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을 띠게 된다. 정당 본위의 정치가 의문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안적 질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

 정당정치의 본가, 영국 보수당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영국에서도 유권자들의 정당이탈 현상은 심각하다. 보수와 진보 사이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보수당의 캐머런 총리가 외쳤다. ‘더 이상 중앙정치에 계열화된 지방정치로는 장래가 없다’고. 그래서 풀뿌리의 자발적 실천에 의한 지역 밀착형의 ‘새 정치’에서 ‘정당 재생’의 길을 찾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도 여전히 지방정치를 중앙에 계열화된 정치로 묶어두려 하고 있다. 새누리당을 보자. 6·4 지방선거는 이미 더 이상 지방선거가 아니다. 중앙의 당권 경쟁, 나아가 포스트 박근혜를 향한 대선 경쟁장이다. 지방선거에 박심(朴心) 논란이 뜨거워지는 이유를 유권자들은 알지 못한다. 정말 유권자들과는 멀고도 먼 지방선거다.

 새로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제3의 정치세력에 의한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6·4 지방선거가 그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았다. 지방선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인의 충원이나 정책과제의 실현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관심을 가지려 했더니 달아나버린 새 정치의 모습에 실망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이나 안철수 개인의 리더십을 문제 삼는 지적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도 포괄정당화의 흐름에서 허덕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선거 무공천’을 약속하고도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단적인 예다.

 이런 우리 정치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객(客)이 아닌 주인으로서 지방선거에 임해야 한다. 정당의 대립 축이 사라지면서 선거가 정당이 아니라 인물이나 이슈 중심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자연 유권자에 대한 무분별한 선심 공약, 서비스 경쟁이 선거판을 좌우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이런 선심 경쟁장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유권자들이다.

 물론 정치가들이 예산을 따내 유권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표를 받아내는 정치과정은 민주정치에서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가 단순한 고객 서비스 차원에 몰두하게 되면 정치의 본질은 접객업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정치가의 비전이나 리더십은 기대될 수 없다. 지방선거는 접객 노하우의 경쟁장으로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더 이상 정당정치의 혼미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도 영국처럼 지역 밀착형 정치를 통해 정당 재생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선거를 중앙의 여야 대리전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그리고 지방선거를 ‘유권자와 가장 가까운 선거’로 만들어야 한다.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