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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덩어리' '좋은 규제' '신중' 프레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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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시윤
성시윤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지난 20일 청와대 ‘끝장토론’ 이후로 도처에서 온통 ‘규제’ 관련 담론이다. 입 있는 자마다 열심히 규제를 ‘틀 짓기(framing)’ 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드러지게 하고, 축소하고 싶은 것은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일부를 부각해 현실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규제 개혁’ 관련 담론을 들여다보니 세 가지 프레임이 발견된다.

 우선 ‘암덩어리’ 프레임이다. 주창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핵심 주제는 ‘쓸데없는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발언)라는 것이다.

 규제는 누구의 손끝에서 나오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한 결과”라고 주장하지만 아무튼 정부 관료들이 만든다. 자연스럽게 ‘관료=친(親) 규제 유지 집단’이라는 의미로 이어진다. 기업들이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프레임이다. 관료들로선 언짢을 수밖에 없다. “규제가 암덩어리인 것이 아니라 암덩어리를 예방하거나 도려내기 위해 생겨난 것이 규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곤혹스러울 게다.

 그래서 관료들은 ‘좋은 규제, 나쁜 규제’ 프레임을 꺼내든다. 핵심 주제는 ‘우리 규제는 계속 있어야 하고, 저쪽 부처 규제는 없애야 된다’다. 이 틀은 앞으로 국민들이 더욱 자주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게임 셧다운제(여성가족부 대 문화체육관광부), 학교 주변 호텔 건립(교육부 대 문화체육관광부) 관련 논쟁에서 이미 보지 않았나.

 세 번째는 ‘규제 완화 신중’ 프레임이다. 핵심 주제는 “꼭 있어야 하는 규제가 이 바람에 없어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좋은 규제’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관료들의 프레임과 유사하다. 차이점은 이 프레임을 주로 쓰는 것이 사회적 약자, 혹은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영이라는 점이다. 이 프레임에선 “○○야말로 규제다!”라는 외침을 경계할 것을 주문한다. ‘암덩어리’ 프레임이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분위기에서 ○○를 낙인 찍는 집단을 조심하자는 게다.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집단은 관료보다는 대기업이다. 이 프레임의 취약점은 ‘규제 관료’에 의해 악용될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이들 세 프레임은 교묘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들 프레임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규제 개혁’ 전쟁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프레임의 차이를 불러오는 것은 가치관이다. 시장과 정부, 경쟁과 규제, 효율과 공익 간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규제에 대한 시각도 갈린다. 개인적으론 이들 간의 관계가 갈등적이거나 보완적이기보다는 협력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 프레임 중 정답은 없다. 그래도 답을 내야 한다면 ‘모든 프레임이 공론의 장에서 서로 건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하자’ 아닐까. ‘규제 개혁’을 둘러싼 담론 경쟁에서 ‘귀 있는 자마다 듣는’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