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핵』제한 이미 늦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차 대전 말기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지 만4년6주 만인 49년 가을소련의 첫 원폭실험은 미국정부와 의회는 물론 소련이 핵분열원리를 이용한 폭탄제조에 4∼5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예언했던 과학자들에게까지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국은 그들의 핵 정책에 대한 도전으로 단정하고 새로운 핵 개발계획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즉 핵분열 물질의 공급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고 나아가 원자무기제조를 재촉한 것이다. 즉 「로스알라모스」원자력 연구소는 핵무기의 개발에 열을 올렸다.
또 원자력위원회(AEC)의 계획에 관련되는 과학기술을 조언하기 위해 AEC자문위원회가 「J·R·오펜하이머」위원장을 비롯, 전시의 과학기술계의 지도급 인사로 구성되어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시에 핵무기의 개발과 생산에 획기적인 공헌을 한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개발을 비롯한 미·소 양국의 핵전쟁에 반기를 들고일어났다.
당시 「오펜하이머」는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이니셔티브」를 잡고 추진중인 핵분열에 의한 폭탄의 연구개발은 51년을 목표로 가속화할 것으로 돼있으나 방사능오염 등 지구와 인류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제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했다. 동시에 어떤 제한을 하지 않으면 대량학살의 무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오펜하이머」건의는 당시 「트루먼」대통령에 의해 묵살되었고 그 후 미·소의 핵무기 개발경쟁은 더욱 열기를 띠고 있다. <사이언티픽·아메리컨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