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문학」의 대중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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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유=다른 예술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문학에 있어서는 「대중성」이 「통속성」과 구별돼야할 것 같습니다. 우선 현대사회에 있어서 대중의 개념이 옛날과는 매우 다르지 않습니까. 대중의 질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은 과거 「통속문학」으로 불리던 대중문학이 오히려 「순수문학」에 포함돼야한다는 당위성을 대변하는 것으로 봐야겠지요.
김=순수문학이 소수「엘리트」의 것이고 대중문학이 대중의 것이다 하는 종래의 개념은 대중 그 자체가 「엘리트」권에 수용됨으로써 뜻이 없어졌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대중문학으로 불리던 문학형태는 이제 와서는 오히려 통속문학으로 간주해야할 것입니다.
유=종래의 순수문학이 『문학을 비판할 수 있는 「엘리트」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볼 때 과연 지금의 대중독자들이 모두 문학을 비판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김=그것은 문학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을 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닐까요. 작가가 현대적 의미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을 썼을 때 그것이 널리 읽히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중과 괴리된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유=요컨대 문학은 선택의 권리가 대중, 즉 독자에게 주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대중문화현상이 아무리 타락하는 증세를 보이고 있다해도 문학은 타락할 수 없다는 것이 그 까닭입니다. 만약 「엘리트」지향을 목표로 하는 문학과 대중지향을 목표로 하는 문학을 구분한다면 옳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염려가 있는 것은 후자가 아니라 오히려 전자 쪽 입니다.
김=「조지·오웰」은 「엘리트」문화가 「파시즘」의 주축을 이루었다는 점을 들어 『「엘리트」에게나 대중에게나 좋은 점과 좋지 못한 점은 똑같이 있지만 좋은 점이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은 대중 쪽』이라고 말한 일이 있는데 이 말은 음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특수지식층이 아니라 대중』이라고 하고있지 않습니까. 대중을 위해서 작품을 쓴다고 생각한 「톨스토이」야말로 현대문학이 지향해야 할 요체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유=대중을 위한다는 것은 곧 작가자신의 성실성을 뜻하는 것이지요. 어떤 작가 혹은 작품이 아무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 대중을 위한 성실성이 결여돼 있다면 자연히 독자의 선택으로부터 제외되게 마련입니다.
김=우리나라에서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구별이 없어진 것을 70년대부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반문화적 소설 같은 일부 젊은 작가들의 활발한 움직임과도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유=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이른바 70년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됐다든가 하는 판단은 잘못입니다. 그 같은 현상은 대중 그 자체의 문제이지 작가자신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어쨌든 오늘날과 같은 문학의 대중화현상은 우리문학사상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로써 우리는 두 가지의 새로운 현장에 부닥치게 되는데 그 하나는 문학서적의 출판보급이 전에 없이 활발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문학이 영화계를 압도하고있다는 것입니다.
유=최근에 이르러 문학작품이 전체 출판물 판매량의 20%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장식품으로만 팔리던 문학전집이 순수한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는 사실도 반갑구요.
김=문학작품의 영화화 「붐」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가 문학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들 정도인데요.
유=영화가 본질적으로 문학과 다른 예술형태이기 때문인 겁니다. 문학작품이 영화화 될 때 문학 쪽에서 최소한의 권한을 갖는 일이 중요하겠지요. 이 시대의 문학이 시대상황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의 대중화현상에 기여하고 있는 듯 하지만 문학의 근본정신은 오히려 시대상황을 초월해야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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