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전국학련|나의 학생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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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사의 금자탑
나는 지난 4개월여에 걸쳐 일제하의 학병거부운동, 해방후의 반탁학생운동, 6·25때의 학생 구국 운동을 썼다.
내가 이글을 쓴 이유는 민족의 큰 수난기에 우리 학생들은「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싸웠는가. 」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볼때 「남기고싶은 이야기」를 다하지 못한것은 물론「남겨야 할 이야기」조차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사실 내가 다룬 상황이 가장 어렵고 처절한 민족의 시·연과 투쟁, 그리고 대전환의 시대였기 때문에 나의 제한됐던 시야와 무딘 붓으로 전체를 그려내기란 벅찬 일이었다.
더우기 30년전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고 자료가 부족한데다 관계자의 상당수가 아직 생존해 있어 사실을 파헤치는데도 고충이 많았다.
다만 역사의 현장을 뛰어다닌 목격자로서, 또 구세대와 신세대를 연결하는 교량자라는 사명감에서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내 중심의 얘기가 된 것 같고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동지들의 충혼을 그리는데 미흡했던 것 같은 아쉬움을 금할길이 없다.
나는 학생운동의 선두에 섰을뿐 진짜 투쟁가는 여기에 소개되지도 않은 수많은 동지들이며 투쟁의 대열에 참여했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넋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이름과 공적을 일일이 밝히지 못한 점, 특히 그날의 감격과 정열을 유일한 인생의 추억으로 삼고 오늘도 쓸쓸히 시골에서 지낼 수많은 동지들에게 한없는 죄스러움을 느낀다.
또한 사실을 엮어감에 있어 불가피하게 본인이나 그 유족에게 누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원내활동과 당무·국회운영문제등으로 바삐 뛰어 다니다보니 사건의 현장·시간·참여인물들을 기술하는데 있어서도 미흡했던점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제한된 시간, 제한된 인력으로 조사·확인작업을 하는데 완벽을 기하지 못했음을 밝히며 앞으로 다른 기회가 주어지면 보완을 해볼 생각이다.
역사를 말할때 가정법을 쓸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역사의 가정」을 골똘히 생각했다.
『만일 전국학련이 없었다면 반탁운동이 승리했겠는가』 그러나 『그때 그렇게 안했더라면?』 오늘날 우리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게 분명하듯이 만일 전국학련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 역사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나는 전국학련을 지나치게 미화하거나 역사의 기념비로 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해방후의 혼돈속에서 전국학련은 민족의 진로를 정립한 대열의 최선봉에 섰었다.
반탁운동은 곧 피나는 건국운동이었다. 「만일 신탁통치를 찬성했더라면 통일이 되었을지모른다」는 가정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직후에 또다시 신탁통치를 한다는 것은 곧 보국행위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또 통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비에트」식 공산국가로의 통일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요즘은 남북대화를 평화적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그땐 제자가 스승을 「반동」이라 죽이고 동생이 형을 「동무」라 부르는 공산주의 교리가 판을 치는 때였다. 더우기 공산당은 일사불란한 이론과 조직 밑에서 행동력을 과시하는데 비해 민주진영은 이론과 조직이 산만하며 사정없이 밀렸다.
당시의 학생운동은 지고지순한 애국투쟁이었다.
당시 젊은학생들은 가장 귀중한 인생의 첫 토막을 나라와 겨레에 바쳤다. 따라서 남처럼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전국학련은 역사의 개척자라고 자부하지만 동시에 피해자이며 민족의 희생자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녹슨 훈장하나 없고 죽어간 동지를 위로할 한평의 제증도 없다.
우리가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하는한 전국학련은 조선의 사랑과 후손의 흠모를 길이 받아야할 것으로 믿고있다.
우리는 「신탁통치 반대, 38선 철폐, 조국의 즉시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국토는 분단된채로 있고 국제공산주의 마수는 여전히 가중 되며 우리 안보는 4대현국의 역학관계 속에 엉켜있다.
오직 변한 것은 그때의 패전국 일본이 또다시 강대국에 끼여있다는 정도다.
전국학련은 역사의 유물로 사라질것이 아니라 그때의 정영과 뜻과 힘을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야할 것으로 믿고 이를 호소한다.
그간 이 글을 읽어주신 강호제현께 감사드리며 이글을 연재해준 신문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마운 뜻을 밝힌다. (끝)
20일(일부지방21일)부터는 일제때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한국등산 30년」을 김정태씨(한국산악회부회장)의 집필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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