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부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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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다리미·전기밥솥·동화책등을 들고 다니는 월부상인을 많이 대할수 있다. 그들과 승강이를 벌이는 일도 자주 본다. 때로는 지나친 상술로써 판매효과를 높이려는 것을 볼땐 우리 소비자들이 조롱당하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며칠전 모 출판사의 「마크」를 단 승용차가 마을을 돌며 「마이크」소리를 높여 외친다. 광복30주년 기념으로 저금통을 무료로 배부하겠으니 한 집에서 한 사람씩 나와서 받아가라는 것이다. 시골인지라 삽시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줄을 이었다. 차안에서 한 사람이 앞에 나오더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생활과 저축향상을 위한 것이며 자기들은 전국을 다니며 계몽지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더니만 저 노인과 아이들에게 저금통을 나눠주고 여러분은 이제 집으로 가라고 한다. 젊은 아줌마들과 아가씨 몇이서 기대(?)를 하고 섰을 때 그들은 두꺼운 책을 열권 정도 내놓으며 그냥 「서비스」하겠단다. 오늘의 행운자에게 드리는것이라며 책 내용을 소개했다.
의·식·주생활에 관한 것, 임신·출산·사교·「에티켓」등에 관한 생활대백과였다. 월부인줄 모르고 멍청히 서있던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권씩 받아 들어야 했다. 매월 자기네들이 책을 산 가정을 찾을테니 저금했던 것을 모조리 털어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주소·성명을 적기에 바빴다. 책이란 필요성에 따라 돈에 구애없이 살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부족한 생활비로 겨우 살아가는 빈촌에서 「공짜 저금통」의 선전술에 넘어가 이웃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주소록에 자기집의 약도를 그려주고 있는 사람들이 한심스러웠다.
광복30주년 운운하며 찌부러진 저금통 하나씩은 배부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런 선전술로 순진한 시골사람들을 당황케나 하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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