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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만 되면 느는 아내 복통 … 꾀병인줄 아셨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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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2년 3월 주부 최모(33·서울 송파구)씨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입학시켰다. 영어 실력이 달리는 아이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나중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남편은 무관심했고 부부 사이가 벌어졌다. 얼마 안 지나 최씨는 밥만 먹으면 배가 아프고 가스가 찼다. 이런 증세가 수시로 계속됐다. 집 근처 병원을 찾아 약 처방을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몇 군데 병원에 다녔지만 마찬가지였다. 약을 먹으면 잠시 증상이 좋아질 뿐 다시 아팠다. 종합건강검진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병원 측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고했다. 지난해 8월 전문의를 찾았다. 장시간 상담 끝에 의사는 아이 문제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 후 상담과 약물 치료를 계속하면서 호전됐고, 지금은 약을 먹지 않고도 불편 없이 지낸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새 학기를 맞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ADHD·틱장애 등이 악화하거나 원인 모를 복통을 호소한다 . 학생뿐 아니라 부모도 그럴 수 있다. 개학을 즈음한 3~5월, 9월에 많다. 부모의 새학기증후군은 과민성 장(腸)증후군, 원인 불명의 급성 복통, 자율신경장애 등을 말한다. 이 질환은 흔하다 보니 ‘봄을 타나 보다’라며 무심코 넘긴다.

 가장 많은 질환은 과민성 장증후군이다. 복통이 지속되면서 설사가 계속 나거나 반대로 변비가 이어진다. 자율신경장애가 있으면 다리가 저리거나 시리고, 피부가 남의 살처럼 느껴진다. 현기증·저혈압·졸도·배뇨장애·눈물샘 기능장애 등의 증상도 있다.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는 6153명(월평균 512명)으로 3~5월과 9월에 환자가 몰렸다. 4월은 574명, 3월 565명, 5월 549명, 9월 531명이었다. 자율신경장애 환자 95명 중 25명이 3~4월에 몰려 있다.

 특히 과민성 장증후군 환자는 여성이 3377명으로 남성(2776명)보다 훨씬 많다. 이는 어머니가 자녀의 새학기증후군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스트레스 저항력이 떨어지는 기질적 특성도 있다. 또 새 학기 전후 설·추석의 ‘며느리 스트레스’가 신경성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경성 질환이 있어도 장기(臟器)의 모양이 달라지지 않는다. 혹이 생기거나 뒤틀리는 등의 변화가 안 나타난다. 꾀병처럼 보인다. 이런저런 검사를 해도 진단하기가 까다롭다. 이 때문에 최씨처럼 이 병원 저 병원 ‘의료 쇼핑’을 하게 된다. 지난해 세브란스 건강증진센터를 찾은 469명 중 121명(25.8%)은 특정 증상에 대해 두 곳 이상의 병원을 찾았지만 진단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봄철에 속이 쓰리고 배가 아픈데 원인이 안 나오면 신경성 질환을 의심해야 한다. 이럴 때 속에 담은 고민을 혼자 끙끙대면 병이 악화한다. 주변 친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털어놓는 게 좋다. 그렇게만 해도 증상이 호전된다. 이런 환자의 가족이나 직장 동료는 꾀병을 부린다고 무시하지 말고 환자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며 절대 꾀병이 아니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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