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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꽉 졸라매도 R&D 투자 확 늘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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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경기 침체기. 많은 기업이 흥망의 기로에 선다. 기업의 역량에 따라 도태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성장하는 기업도 나타난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에 따른 경기 침체기를 보자.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버블 붕괴 전 상위 25%의 미국 기업 중 60%만이 침체기 이후에도 상위 25%의 자리를 지켰다. 반면 하위 75%에 속하던 기업 중 14%가 상위 25% 그룹으로 부상했다.

"외환위기 때 상위 25% 기업, 셋 중 둘은 하위그룹 추락”

세계 PC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던 컴팩이 HP에 인수돼 회사 이름조차 사라져 버린 것, 적극적인 투자 전략을 펼친 델컴퓨터가 선두로 등장하고 HP가 2위로 도약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또 다른 컨설팅 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의하면 글로벌 보험업계도 이 기간 톱10 중 5개 사의 서열이 뒤바뀌었고, 철강기업도 40%가 순위가 뒤집혔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의 조사에 따르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속에 국내 기업 상위 25% 중 67.4%가 상위 25%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경기 침체기에 부상하고, 성장하고, 살아남는 기업의 비결은 뭘까.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펴낸 ‘경기침체기 기업 생존전략’ 보고서는 “위기에 오히려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투자를 계속하는 것, 인재를 확보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한다.

삼성전자·현대기아차 금융위기 때 글로벌 리더십 확보

 구체적인 예를 보면 상황은 더 뚜렷하다. 삼성전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세계 최고 기업 반열에 올랐다. 당시 인텔·도시바·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업체가 R&D 투자액을 줄였지만 삼성전자만 유일하게 R&D투자를 늘렸다. 그 결과 모바일용 프로세서, 그래픽용 D랩 등 고가 제품의 비중을 높일 수 있었다. 2008년 6.8%에 그치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11년 9.7%로 늘어났다.

 현대기아차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남들이 투자를 줄일 때 선제적 투자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한 경우다. GM·혼다·도요타 등이 일제히 2008년을 고점으로 R&D투자를 줄였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지속적인 투자로 소나타·제네시스·K5 등 중형 승용차의 성능과 소비자 평가, 인지도가 미국 시장에서 크게 올라갔다. 그 결과 도요타 등이 리콜 사태로 부진한 사이,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 점유율을 2007년 4.8%에서 2011년 8.9%로 끌어올렸다. GM·혼다·도요타와 달리 유일하게 미국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회사가 됐다.

선제적 R&D 투자와 인재 확보, 글로벌 기업 도약의 열쇠

 2000년대 초 IT버블 붕괴 때 미국 코닝사의 흔들림 없는 R&D 투자도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다. 코닝은 2001년 IT 버블 붕괴로 광섬유 사업이 부진하면서 위기 상황을 맞았다. 110 달러 대의 주가는 1 달러대로 폭락했고, 12개 공장을 폐쇄하며 전 직원의 절반에 달하는 2만5000여 명을 감원해야 했다. 100억 달러를 투자한 광섬유사업에서도 30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2001년과 2002년 뚝심 있는 R&D투자를 계속했다.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을 2000년 11.6%에서 2002년 15.1%로 오히려 늘렸다. 위기 국면인 2002년 31억 달러까지 줄었던 매출은 2011년 78억9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2011년 영업이익률도 21.4%에 달한다. 코닝은 경영환경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R&D를 포기하지 않고 연매출의 10% 이상을 R&D에 계속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투자액의 70% 가량은 5~10년 내 성과가 나오는 단기 연구에, 나머지 30%는 10년 이상의 중장기 연구에 투자한다.

 이렇듯 경기 침체기의 R&D 투자는 호황기에 경쟁 기업보다 앞설 수 있는 중요한 동인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의 주축인 국내 대표기업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올해를 선제적인 R&D 투자를 통해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해로 삼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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