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라시에」재산의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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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하일레·셀라시에」전「이디오피아」황제의 서거로 그가 지난 수십년 동안「스위스」은행에 예치한 것으로 알려진 금괴를 포함한 50억「달러」(군사 정부서는 1백50억「달러」라고 주장)의 비밀예금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작년「쿠데타」로「셀라시에」황제를 폐위시킨「이디오피아」군사정부는 황제가 58년간의 재위 중에 황실 소유의 금광에서 생산된 많은 금과 비령 소유 기업체의 이익금을「스위스」의 은행에 예치,
총 금액이 1백50억「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하면서「스위스」당국에「이디오피아」정부의 인출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었다.
「스위스」당국은「이디오피아」정부에 협박을 받지 않고 작성된 양도증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러한 양도증서가 제시되었다는 보도는 아직 없다. 「셀라시에」전 황제의 상속자로는 그의 아들「아스마·워센」황태자와 황제가 가장 아끼던 손자「자례·야코브」(영국옥스퍼드 대학생)등 30여명의 왕자 등이 있다.
작년11월「이디오피아」정부 관리들은 주「이디오피아」「스위스」대사에게 황제가 인출권을 군사 정부에 양도하는 증서에 서명했다고 말했으나 이러한 증서가「스위스」측에 제시되지는 않았다.
최근에는 황제 예금의 인출 문제를 둘러싸고「이디오피아」와「스위스」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이디오피아」의 한 신문은「스위스」가 혈전을 은닉해 두고 있다고 비난했다. 「라스·타마리·하일레·셀라시에」는 1892년7월23일 태어났다.
영화로왔던 「솔로몬」왕과「시바」여왕의 2백25대 손으로 14세 때 주지사가 됐다.
그는 30년「게오디투」여제를 폐위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1936년「베니트·뭇솔리니」의「이탈리아」군의 침략을 받게되자 「셀라시에」는 영국으로 망명, 1945년 연합국 승리와 함께 귀국했으며「유엔」창설「멤버」의 일원으로, 「아프리카」단합을 추진하고 제3세계의 대변인으로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왕족들의 요직 장악과 아울러 정부 관리들의 부패가 만연, 고질화되면서 빈곤한 국민들의 생활은 해마다 더욱 피폐해졌으며 왕실에 대한 원성이 높아져 1960년 아들「오산」황태자가 가담한「쿠데타」미수사건이 일어난데 이어 74년에 청년 장교들에 의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그의 50년 권력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었다.【AP·UPI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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