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앞에선 용감한 선택을|고봉경 <서울여대학장>

요새 「노이로제」 환자가 부쩍 늘어서 산 속으로 휴양을 가기 위해 직장에 휴가원을 내려고 진단서를 청구하는 봉급 생활자의 무리가 의사들을 바쁘게 한다는 방송을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자기 직장에서 보람을 못 느끼는 갈등이 쌓여 정상적인 정신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조용한 산 속에서 그런 갈등만을 되새기며 스스로를 가엾은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생각만을 파고 들 때에는 도리어 미쳐 버리기가 쉽다는 것이 어떤 의사의 의견이었다.
따라서 진정한 치료법은 각자의 직장과 생활에서 보람을 찾도록 스스로 싸워 나가야지 피해 다녀서는 안 된다는 해답이었다.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하루를 살아도 보람있게 살아야만 인간다운 생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동물이 가질 수 없는 귀한 생활이다. 그러면 이 귀한 생활이란 무엇인가? 곧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요, 거기서 우러나는 행동이다.
사람은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그 육체를 살려가기 위한 의식주 문제의 해결이 우선 급하다. 그것을 위해 주야로 뛰어다니는 일이 결코 나쁜게 아니요,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노력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고 만다면 사는 보람을 찾을 수는 없다. 개나 고양이도 저 살 궁리를 할 줄 알고 애쓰고 뛰어 다닐 줄도 안다.
남을 생각해 주고 남을 위해 무언가 바칠 때만이 인간다운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요, 인간만이 맛 볼 수 있는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나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잘 살자」는 목표를 향해 나갈 때만이 인간 완성의 길을 걷게 마련되었고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걸을 때만이 보람을 찾게 되는 까닭에 다른 딴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직장에서 보람을 못 느낀다면 원인을 캐어 볼 필요가 있다. 나와 내 가족의 생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속히 해결될 수 있는 곳으로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고 마음의 만족을 못 느끼는 것이라면 만족의 목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남보다 속히 승진되어 자랑스러운 위치에 속히 올라앉지 못함이 불만이라면 내 태도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직장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사업하는 직장만 아니라면 무슨 일을 내가 맡고 있든지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서 남 보기에 대단치 않은 직무라 하더라도 만점이 될 수 있게 딴 맘으로 해본다. 또 내 직장에서 어떤 사람들과 접촉을 하든지 나 때문에 그들이 행복을 느낄 만큼 해보자고 진심으로 친절을 베풀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의 고마워하는 포근한 심경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때에 느끼는 만족은 「우리와 함께 잘 살자」라는 인간다운 생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봉급 생활자가 빠지기 쉬운 크나큰 유혹은 첫째 정성을 쏟으나 안 쏟으나 보수는 정해진 것이니까 보수도 늘지 않는 일에 어리석게 정성을 쏟는 것보다 법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부수입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운동을 해서라도 지위가 올라가 속히 출세를 하는게 경쟁이 치열한 이 시대에 현실적인 일이지 남을 생각해 준다는 이야기는 위선적이라고 잘라 버리는 생각이다.
재물과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악착같이 덤벼들어 소원 성취되거든 인생의 마지막 장에 가서 거룩한 생활로 마무리해도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나 그렇게 될 수 없다. 보람있는 생활을 하려면 인생의 출발 전에서부터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생활을 배우며 그 길로 들어서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내게는 유리하지만 남에게는 손해가 된다면 버리고 딴 길을 택해야 된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내게 아무리 큰 성공이 담보된다 해도 용기 있게 거부하고 살려다가 나만 비참하게 되면 어찌하느냐는 근심파도 있다.
그러니까 종교가 필요하다. 일생을 두고 여러번 「갈림길」 앞에 설 때에 보람찬 생의 길을 용감히 택한다는 것이 하늘에 통하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결코 나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개인이나 국가나 이 선택이 바로 될 때만이 참된 보람과 만족과 발전이 약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