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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성 현금 차관의 재 허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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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그 동안 금지해 왔던 단기 현금차관을 다시 허가해 줄 것이라 한다.
외환 수지가 나빠진 뒤부터 진작 장 단기 자본도입을 크게 늘려 적자폭을 메워 온지 오래이므로 단기성 현금 차관인들 구태여 금기할 이유는 따로 없다고 할지도 모른다. 연초 이래 현금 지급을 줄이기 위해 단기 연불 수입을 크게 늘려 온 처지였다. 따라서 현금 차관도 기능 면에서는 그와 크게 다를 바 없으므로 유효하게 이용된다는 보장만 있으면 우선 당장의 위급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단기 연불 수입이 가지는 비 경제성, 예컨대 구매 시장의 한정성이나 시간적 제약 등을 생각하면 현금 구매가 훨씬 경제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러나 이 같은 여러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현금 차관으로 인하여 자원의 낭비와 통화 질서의 문란, 기업 부실화 등 갖가지 국민 경제적 피해를 보아 온 것도 사실이다. 개발 초기의 정책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이 현금 차관에 대해 여러 경제 여건이 크게 달라진 지금에 와서도 일반의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인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정부가 최근 수년간 이 차관을 적극 억제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현금 차관이 생산적 투자에서 벗어나 개인의 축재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었던 소지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외자 정책이 분별을 잃은 데다 환율·금리정책에서 현금 차관의 특혜화 요인을 방치했던데 있었다.
이제는 외자도입 과정의 불합리 요인도 이전보다는 훨씬 줄어들었고, 환율도 실세에 가까워 진데다 국내외 금리 격차도 훨씬 좁혀진 결과 현금 차관의 특혜적 소지는 크게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이 현금 「베이스」의 차관인 한, 그 운용이 견실하지 않으면 비경제적일 가능성은 상존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시설재 차관과는 달리 물자나 현금은 그의 목적외 유용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차관의 사용 목적을 엄격히 제한하고 사후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국제수지의 악화를 가속화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정부 방침으로는 원면·고철 등 36개 주요 원자재 도입이나 수출용 시설재의 개·보수, 기 도입 차관의 원리금 상환 등에만 허가 대상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불가피한 특정 원자재 수입이나 시설재의 개·보수는 그 대상 품목의 선정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당면한 수입억제정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문제는 비록 합당한 대상 품목이라 하더라도 업자들의 무절제한 수입 수요를 유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므로 총체적인 허용 한도를 엄격히 지키는 일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현금 차관으로 원리금을 상환케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므로 재고 할 필요가 있다. 부득이한 긴박한 것이라도 국민 경제적 중요성에 따라 허가액을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
정부가 현금 차관의 금리·기한·지보 조건·상환 방법 등 제반사용 조건을 비교적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다만 차관 환경이 어느 때보다도 경화되고 있는 국제 금융 시장에서 이런 제 조건에 맞는 차관을 쉽게 얻을 수 있을는지 두고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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