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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외식·제과업 꽁꽁 묶었더니 외국업체들이 물 만났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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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선권(46) 카페베네 대표는 지난가을부터 겨울까지 수염을 깎지 않았다. 2008년 카페베네를 창업하고 나서 항상 단정한 모습을 보여온 그였기에 직원들은 “뭔가 큰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는 주변에 “집중할 일이 생겼다”고만 했다.

 그러던 그가 8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선웨이몰에서 열린 카페베네 말레이시아 1호점 오픈 행사에 깔끔한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김 대표는 “집중할 일 중의 하나가 말레이시아 진출”이라고 말했다. 9일에는 뉴욕 맨해튼 7번가 485패션 거리에 미국 내 10번째 매장이자 3번째 직영점을 열었다. 김 대표는 “오로지 커피사업에 집중해 미국 스타벅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데 말이 다르다. 2008년 창업 초기, 아니 2012년까지만 해도 김 대표는 ‘오로지 커피’라는 말은 쓰지는 않았다. 카페베네의 한 간부는 “지난해 외식업과 베이커리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 지정되면서 생긴 변화”라고 전했다.

 카페베네는 2011년 11월 이탈리안 레스토랑 ‘블랙스미스’를 론칭했다. 초기 김태희·송승헌 등 톱스타를 내세우며 세를 키웠다. 2012년에는 매장 수가 87개나 됐다. 하지만 멈춰야 했다. 지난해 5월 외식업종이 중기적합업종으로 확정되면서 신규 출점이 어려워졌다. 대기업 및 중견기업 계열 음식점은 수도권·광역시의 경우 기차역·지하철역·고속버스터미널 등 교통시설 주변 반경 100m 이내, 비수도권의 경우 반경 200m 이내에서만 새 매장을 낼 수 있게 됐다. 이후 새롭게 문을 연 블랙스미스는 한 개뿐이었고, 그나마도 일부 점포는 문을 닫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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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 인수한 베이커리전문점 ‘마인츠돔’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인수 당시 14개로 시작했지만 지난해 말까지 4개밖에 새로 점포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2월 제과점업이 중소기업적합업종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위원회는 2016년 2월 29일까지 프랜차이즈형과 인스토어형 제과점은 매년 점포 수의 2% 이내에만 가맹점 신설을 허용하고 신규 출점 시 소형 제과점 500m 이내 출점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카페베네 본사의 영업이익이 2012년 66억원에서 지난해 절반 정도로 줄었다. 결국 김 대표는 지난해 말 블랙스미스와 마인츠돔의 지분 50%를 정리했다. 카페베네 관계자는 “중기적합업종 지정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겠다는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복병은 또 있다. 한국휴게음식업중앙회가 지난해부터 동반위에 커피업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고 신청하려 벼르고 있다. 휴게음식업중앙회는 10일 회의를 열어 이 같은 결론을 재확인했다.

 결국 돌파구는 해외였다. 카페베네는 올해 들어서만 해외에 29개 매장을 더 열었다. 11일 현재 미국·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사우디아라비아·일본·말레이시아 등 10개 국가에 206개 카페베네 매장이 들어섰다. 김 대표는 “올해 20개국에 진출, 해외 500호점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다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운영하는 음식점·베이커리전문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베이커리전문점 뚜레쥬르와 외식업 브랜드 빕스·비비고 등을 기반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던 CJ푸드빌의 변화가 가장 커 보인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해산물 뷔페 레스토랑인 씨푸드오션에 이어 지난달에는 피셔스마켓도 완전히 정리했다. 최근 카레전문점인 로코커리 역시 접었다. 뚜레쥬르는 지난해 점포를 단 한 개도 늘리지 못하고 1280개 매장을 그대로 유지했다. 2010년 한식을 테마로 론칭한 비비고 역시 11개만 그대로 운영됐다. 빕스는 2012년 8개 매장을 새로 낸 반면 지난해엔 사전 계약된 3개를 포함해 5개 매장만 출점 가능했다.

 대신 CJ푸드빌은 이 브랜드들을 가지고 해외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뚜레쥬르 매장을 해외에 45개 열었고, 빕스는 지난해 중국 베이징에 첫 매장을 오픈한 데 이어 올 1월 2호점을 만들었다. 비비고 역시 영토확장을 계속해 국내보다 많은 14개로 늘렸다. 2020년까지는 한식 대표 브랜드라는 테마로 해외에 비비고 매장을 700개 이상 연다는 장기 목표도 세운 상태다. CJ관계자는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 내용에 부합하는 신규 매장 입지를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 개척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140여 개의 패밀리레스토랑 애슐리를 운영하는 이랜드 역시 국내 확장에 미온적이다. 이랜드는 애슐리 매장 수를 늘리는 대신 매장이 31개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미니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랜드 관계자는 “점포 수가 많을수록 입지 좋은 곳에 새로 매장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매장이 적은 리미니를 적극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외식·베이커리 기업들이 사업을 철수하거나 주춤하자 마루가메제면(우동)·갓덴스시(초밥)·잇푸도(라멘) 등 일본계 외식업체들이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일본 정통 우동을 표방하며 2012년 12월 서울 홍대에 1호점을 낸 마루가메제면은 지난달 28일 현대 유플렉스 중동점을 열며 총 5개 매장을 운영하게 됐다. 모그룹인 토리돌은 일본에서 라면, 패밀리 레스토랑 등 69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연간 8300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외식업체다. 같은 해 국내에 진출한 도시락 전문점 호토모토는 2015년까지 점포를 200개로 확장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내 중견 외식업계 사이에선 “우리들이 내준 자리를 일본계 외식업체들이 채우고 있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저가 베이커리인 브리오슈 도레가 지난해 말 국내 1호점을, 미국의 치즈케이크팩토리도 최근 매장을 내고 국내 공략을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장세에 있는 기업들 중에는 미리 방어전략을 마련하는 곳들도 있다. 치킨업종이 중기적합업종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BBQ를 운영하는 제너시스BBQ그룹은 국내 시장 대신 2012년 첫 흑자를 낸 중국을 포함해 영국·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판로를 확대했다. 향후 5년간 해외에 직영점을 추가로 500개를 더 연다는 계획이다. 윤홍근(59) 회장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굿웨이 그룹과 현지 진출 계약을 하면서 “규제로 사업 확장이 어려운 한국 대신 열려 있는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제너시스BBQ그룹은 한편으로는 일본 외식기업 와타미와 합작해 GNS와타미를 설립하고 일본 캐주얼 레스토랑 와타미를 들여와 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예 외국 업체와 협력해 규제를 피해간다는 전략이다.

 프랜차이즈 네네치킨 역시 지난해 말 싱가포르에 3호점까지 개장하고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이 브랜드는 한국식 재료뿐 아니라 한글이 표기된 간판과 한국식 배달문화를 앞세우고 있다. 불고기브라더스도 한글 간판과 메뉴를 그대로 사용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최근 중국을 중심으로 다시 불고 있는 한류(韓流)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문병주·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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