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일물중 무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멀지않아 생을 마칠 것을 내다보고 인생무상의 대도 앞에 조용히…영원한 진정을….』 필생의 피와 땀으로 모은 30억원 이상의 사재를 모두 불교중흥을 위해 희사한 장경호옹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첫 머리다.
우리네 주변에서는 돈이면 제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그저 욕뿐이다.
그들은 풍족하게 살고 먹고 쓸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은 다음에도 여전히 돈 모으기 이외에는 여념이 없게 된다. 완전히 욕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칫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 왜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마치 부모의 도리를 돈으로 산 것처럼 착각한다. 자식의 효를 돈으로 살수나 있는 듯이 여기는 모양이다. 엉뚱한 착각이다.
옛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부친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받았으나 이를 친구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면서 말했다. 『만약에 자네 아들이 바란다면 이 돈을 주게. 그러나 똑똑하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게 좋을 것이다.』
그는 또 어느 부호가 막대한 유산을 자손에게 넘겨주었다는 얘기를 듣자 이렇게 비웃었다.
『재산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왜 재산을 관리할 자식들의 오육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한 평생을 두고 모은 재산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우기 우리 나라에서는 「가문」의 의식이 아직도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돈 많은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그 돈의 일부라도 사회를 위해 써준다면 큰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
장옹은 사재를 전부 나라에 바쳤다. 그의 천수는 이제 날짜를 헤아릴 만큼 다되어 간다는 얘기다. 공수래 공수거…과연 옹의 심경은 어떨까. 아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밝은 불심으로 충만돼 있을 것이 틀림없다.
당대의 선사 혜능은 금강경을 풀이하는 가운데서 『본래무일물』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이런 경지에는 아무나 이르지는 못한다. 같은 시대의 명승 신수와 같은 사람도 이르지는 못했다. 그런 경지에 혹은 장옹은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언제 누가 한말인지는 몰라도 『무일물중무진장 유화유월유누대』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또 아무리 많이 모으려 해도 한도가 있다.
꽃이나 달의 아름다움에도 한도가 있다. 그러나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도리어 자기 차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속의 우리로서는 여간해선 바라기 어려운 경지임에는 틀림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