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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세계」의 암투로 잡힌 들치기 두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소매치기와 더불어 서민층에 가장 많은 피해를 줘왔던 대규모 들치기조직이 검찰에 검거됨으로써 칡뿌리보다 질기고 복잡하게 얽힌 「검은 조직」의 내부가 다시 한번 밝혀졌다.
검찰은 이번 단속이 『수사지휘나 해야할 검사가 직접 들치기현장에까지 나서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 뿌리가 깊고 빈도가 잦은 현실』때문에 실시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검찰이 입수한 들치기배 조직 중 손꼽는 5대 조직은 「박영감파」와 「병대파」 「마사오파」「재창이파」와 「송샹파」. 이들 중 「박영감파」의 두목 박승종(64)과 「병대파」두목 김병대(46)가 이번 단속에서 붙잡혔다. 들치기범죄의 원로로 알려진 박 영감은 『가방가죽을 보면 그 내용물을 알아맞힌다』는 정도의 투시안의 소유자―. 자신이 경영하는 여관을 비롯, 서울과 지방의 여관·여인숙을 전전하며 휘하의 베테랑급 「일꾼」(김한중 박원춘 구자철 오창영 고봉자)과 범행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결과 밝혀진 주요범행무대는 서울 청계천일대·동대문시장과 고속버스·터미널이며 지방원정을 위해 주요도시에 정보망까지 갖고있다는 것이다.
4, 5명이 한 조가 되는 들치기는 소매치기나 퍽치기보다 위험부담이 적은 대신 사전공작이 치밀하고 활동무대가 넓으며 「물」(훔친 금품)이 크기 때문에 횟수에 비해 소득이 높은 것이 특징.
그 때문에 두목은 전국 주요관공서나 은행·기업체의 현금출납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하며 이합집산이 심한 일꾼들을 눈에 띄지 않게 교류시킬 수 있도록 여관과 같은 아지트를 갖고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치기배 세계에서 들치기는 아홉번 실패했다가도 한번만 「아다리」(일어로 맞춘다는 뜻)하면 된다는 것. 작년에 있었던 춘천전매서 담배수납대금(39만원) 들치기사건은 「박영감」파가 6번 실패하고 7번째 시도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들은 수금날인 월말께 7차례나 전매서 주변에 잠복하는 끈기 끝에 성사(?)했다는 것.
또 72년7월에는 조흥은행 부산지점 앞에서 천주교재단의 수녀용 봉급 70만원을 싣고 떠나는 지프에 「일꾼」1명을 부딪치게 해 운전사가 내리는 사이 운전석 옆에 둔 돈가방을 들치기한 것 등 지난3년 사이 4천만원대의 금품을 털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훔친 장물은 소매치기와는 달리 전적으로 두목의 손에 의해 처분·분배된다. 박은 장물시장의 본산인 남대문시장내 상인 4명을 장물아비로 확보, 현금이 아닌 장물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장물아비에게로 실어간다. 큰「공사」(범행)에는 장물아비들이 사들일 품목을 미리 정해주기도 하며 「입도선매」(입도선매)식으로 선금을 지불하기도 한다.
들치기가 소매치기와 다른 점은 범죄무대가 광역화되어 있기 때문에 관할구역에 관한 시비가 없으며 일단 범행 중 다른 파와 만나면 공동전선을 펴 이득금을 분배하는 것이 불문율.
소매치기조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장(두목) 이 살아있는 한 회사(조직)는 죽지 않는다」는 것은 들치기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신 두목은 거사자금 동원과 장물처분 능력이 있어야하며 무엇보다도 「학교」(형무소)에 간 「꼬마」(부하)들의 뒷바라지를 잘해야한다.
박 영감이 이번에 검거된 것은 치기배조직 내부의 암투와 부하에게 신의를 잃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짬짬이 경찰의 정보원노릇도 겸했던 그는 암흑가의 스폰서였던 서울시경 김학선 경위가 구속되자 소매치기 두목「아라이 박」을 경찰에 제보했으며 이에 화가 난 「아라이 박」이 교도소에서 그의 조직의 전모를 털어놓음으로써 검거됐다는 것이다.
박 영감과 함께 검거된 김병대는 한때 박 영감의 문하생이었으나 5년 전에 분가했으며 오토바이나 자동차등 기동력을 범행에 동원한다하여 범죄조직 내에 이름이 났었다. <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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