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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중국은 '실사구시'를 아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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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史)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한국, 일본, 구미 등 자유 언론 국가에서는 정부와 전혀 다른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한다. 민주국가 정부는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고, 사실 분석과 논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한다. 천하이 중국 대리대사가 이번에 또 감정적 표현을 나열하며 일본을 공격했다. 그러나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은 이런 정치 캠페인은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역사 문제에 관해 깊은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총리 담화를 고수해야 한다고 중국은 주장한다. ‘어라’ 싶었다. 아베 일본 총리 본인이 역대 정권의 입장을 계승하겠다고 국회에서 표명했고, 나도 기고문에서 그 일관성을 설명한 지 불과 얼마 안 된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아베 총리가 현재의 일·중 관계를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영국과 독일에 비유했다고 중국은 비판한다. 사실은 전혀 반대다. 총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정확히 이를 보도한 한국 신문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이 주변국과의 무력 충돌과 전쟁을 되풀이해온 것과 달리 일본은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았다. 동남아 국가들이 먼저 중국의 힘에 의한 위압을 경계·비판하고, 미·일 등 국제사회가 이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 동아시아의 기본 구도다. 이달 초 중국의 강경 자세와 영토 야심을 경계하는 동남아 국가 최고지도자의 발언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정치 캠페인으로 뒤집을 수는 없다. ‘중국은 과거 대외 침략과 팽창의 역사가 없다’는 주장은 역사의 진실에 정면 위배되는 것임을 아시아 국가들은 잘 알고 있다. 중국의 군사 정책이 투명하다는 근거로 국방백서의 공표를 들고 있지만, 백서의 내용은 과연 충분한가. 그렇다면 왜 많은 나라가 중국의 불투명한 군사비 증가를 문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에 ‘실사구시(實事求是)’란 말이 있다. 감정이나 선입견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 객관적·실증적으로 탐구하고 시비를 밝힌다는 뜻이다. 편견이나 오해를 조장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일본 외교관은 대화를 중시한다. 나는 2년 반 동안 90회의 대학 강의 등을 해왔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행보에 잘못이 있었음을 직시하고 있다. 일본 사회의 일부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2009년까지 베이징 근무 때에 본 중국 공산당 기관지의 논설을 2개만 소개한다.

 ‘역사를 배우지 않고, 분석도 구별도 하지 않고, 슬로건만 외워 남을 매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편협하고 경직된 시선은 애국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계 조류와 역사의 진실에 어긋나며, 중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다’ ‘적의와 편견이 아니라 객관적·이성적으로 전후의 일본을 봐야 한다’. 중국에는 본래 이처럼 합리적인 실사구시의 힘이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진정 바라고 있다. 중국은 매우 중요한 나라다. 그런 중국 정부가 세계 각국에서 사실과 다른 편견에 호소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현명한 한국 국민은 이에 오도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전후 일본의 기본 행보에 대해서도 알아두는 것이 좋다. 중국 정부가 ‘실사구시’와 손자(孫子)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의 자세로 국익과 동아시아의 안정에 더욱 공헌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史)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