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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인 자연미, 실용적인 모던미 … 당신 스타일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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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부엉이·토끼 등 화려한 프린트로 중세의 느낌을 표현한 돌체앤가바나의 드레스.

세계 4대 패션위크가 열리는 도시 중 하나인 이탈리아 밀라노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다. 문화 유산이나 다름없는 오래된 건축물에서 2014년 가을·겨울 패션 트렌드를 보여주는 무대가 열리고, 바이어들은 그곳에서 소비자들을 현혹시킬 미래를 산다. 아직도 기차 안에서 소매치기를 만나게 되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꿈과 환상을 좇는다. 밀라노의 아이러니함은 2014년 가을·겨울 패션쇼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속에서 원시의 자유로움, 중세의 화려함을 꿈꾸는가 하면 근대적 모던함과 실용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를 관통하는 공통 분모가 있다. 바로 장인정신과 상업성의 결합이다. 소비자들의 가벼워진 지갑 사정과 높아진 눈높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고가의 모피 제품 대신 다양한 소재를 선보였다. 여기에 프린트, 자수와 보석 장식, 마감 등의 디테일을 통해 고급스러움 역시 놓치지 않았다.

1 야생적 느낌의 그래픽과 스터드(징) 장식이 돋보이는 에밀리오 푸치의 원피스. 2 독일 영화 롤라(Lola)에서 영감을 받은 프라다의 가죽 재킷. 3 모던함과 중성적 매력을 강조한 엠포리오 아르마니의 슈트. 4 실크에 금색 수를 입혀 고급스러움을 살린 페라가모의 원피스.

머나먼 과거에 대한 향수 … 원시적 아름다움에 기능성을 더하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에 대한 반작용일까. 먼 과거의 자유롭고 화려했던 나날들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는 의상이 많았다. 에밀리오 푸치는 원시의 생명력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쇼의 주제도 ‘야생의 부름(call of the wild)’으로 정했다. ‘프린트의 왕자’라고 불리는 푸치는 토착 부족의 야생적인 그래픽 위에 은 스터드(징)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했다. 에트로는 고대 동서 교역로였던 비단길에서 영감을 받았다. 안은 금박을 입힌 실크 드레스로 가볍고 화려하게, 겉은 울을 겹겹이 이어붙인 케이프로 거친 유목민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돌체앤가바나는 지난 1월 남성복 패션쇼에서 선보였던 중세 키워드를 여성복에도 적용했다. 돌체앤가바나는 ‘기사(Knights)’ ‘투구(Helms)’ ‘꽃’ ‘열쇠’ 등을 키워드로 꿈과 황홀감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동화 『빨간 망토』를 연상케 하는 토끼털로 된 후드 모자와 꽃무늬·열쇠 문양이 새겨진 시폰 드레스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면서도 기능성은 잃지 않았다. 미국 패션 전문 일간지인 WWD(Woman’s Wear Daily)는 이번 쇼를 전반적으로 ‘변주된 아름다움(twisted beauty)’이라고 평가하면서 마르니를 대표주자로 꼽았다. “구조적인 면이 원시성과, 원시성은 스포티한 면을 만났다”며 “복잡하면서도 대담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마르니는 깃털로 장식된 스커트에 긴 털로 장식된 탑을 매치한 옷을 선보였다. 이에 대해 마르니 측은 “민속적인 요소에 스포티함과 기능성을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치마는 셔링(주름)을 잡고, 허리 부분은 벨트로 잘록하게 표현해 활동적인 느낌을 살렸다.

5 움직임에 따라 입체감과 음영감이 달라지는 보테가 베네타의 원피스. 6 벨트와 주름으로 스포티
함을 강조한 마르니의 의상.

근대로부터의 영감 … 중성적 매력으로 실용성을 살리다

이번 패션위크의 또 다른 한 축은 근대적이면서 매니시(mannish, 남성적인)한 느낌을 강조한 옷들이다. 큰 모자와 짤막한 바지, 턱시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강조한 옷들이 자주 등장했다. 프라다는 근대적이면서 남성적인 느낌의 ‘독일’로 눈길을 돌렸다. 시폰으로 된 란제리 소재의 치마 위에 남성적 느낌의 가죽 재킷을 걸친 옷들은 1981년 독일 영화인 롤라(Lola,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백스테이지에서 “나는 이 테마가 아주 마음에 든다”며 “높으면서 낮고, 세련됐으면서도 천박하다”고 말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역시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뒀다. 남성적인 턱시도 안에 하늘거리는 여성적인 시폰 소재를 매치하고 남성의 넥타이를 연상케 하는 스카프를 함께 연출했다. 바지는 밑단이 발목 또는 종아리까지 오도록 디자인해 편안함과 실용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브루넬로 쿠치넬리 측은 “과함과 부족함이 조화를 이루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시너지를 이루는 세련된 간결함을 추구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오버사이즈 바지 슈트로 중성적인 매력을 보여줬다. 촘촘히 박힌 진주가 스트라이프 무늬처럼 보이는 바지를 선보이는가 하면, 몸매를 드러내게 하는 상의에 발목이나 종아리까지 오는 통이 넓고 짤막한 형태의 바지를 매치해 남성성을 강조하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을 잃지 않았다.

장인정신에서 미래를 찾다 … 소재와 가공 능력

이번 밀라노의 패션쇼장은 ‘장인정신’ 경연장이라 할 만큼 다양한 소재와 이를 가공하는 기술력이 돋보이는 무대가 많았다. 마치 ‘색상과 디자인은 유행에 따라 특정 브랜드가 앞서 나갈 수 있지만 소재를 다루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듯했다. 대표적인 곳이 프라다였다. 나파 가죽(nappa·양가죽)이나 실크 등 소재에 상관없이 가죽 트리밍을 통한 고급스러움을 강조했다. 지난 시즌에 많이 사용됐던 털의 경우 옷깃이나 셔링 등 디테일을 살리는 용도로 부분적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푸어 퍼(poor fur)’를 가을·겨울의 핵심 트렌드 중 하나로 소개하면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이를 ‘빈약한 털(poor fur)’이라고 불렀지만 프라다의 손길을 거치면서 (오히려) 럭셔리하게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페라가모 역시 모직의 소재에 가죽으로 트리밍을 한 망토를 핵심 디자인으로 꼽았다. 실크에 날염을 한 뒤 검은색 실과 금색 실로 촘촘하게 자수를 놓고 소매 부분은 가죽으로 테를 두른 원피스도 나왔다.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고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잔잔한 스톤(돌 모양 보석)이 달린 이브닝 드레스를 선보였다. 라임색 바탕색에 크기가 다른 실버 스톤들을 이어 붙인 은은한 천을 덧대 미세한 물결 모양의 디테일을 만들어냈다. 보테가 베네타는 겹겹의 주름 위에 다른 색상의 천을 덧대 입체감과 음영감을 강조했다. 보테가 베네타 측은 "몸에 거의 붙는듯한 착시효과를 내면서도 주름과 트임을 통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역시 주력 상품인 니트웨어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비즈 장식과 보석을 달아 고급스러운 디테일을 강조했다. 토즈는 가죽에 옻칠을 하거나 기하학적 무늬를 입힌 가죽과 양모, 실크와 밍크 제품들을 선보였다.

밀라노=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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