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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림<전 숙대 총장·현 경남대 학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얼마 전 미국에서인지 「우먼·리브」라는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더니 금년에는 「유엔」에서 「여성의 해」라는 것을 정해놓고 그 물결이 우리 나라에까지 들어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남성들은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교통지옥과 싸우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아차 하는 순간인 판에 이건 또 무슨 고달픈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여생의 해」라고 설마 남자들을 누르고 그 위에 올라서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외국여성들이 남편이나 사회에서 대접을 받는 것은 다 그만한 값어치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외국여성들은 그야말로 알뜰살뜰 물건 아끼고 낭비 안하고 가사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남편 위하고 자녀들 가정교육을 잘 시키고 있다고 한다.
자녀교육에 열을 지나치게 올려 초등학교 때부터 감투자리 얻어주려고 담임선생을 유혹하거나 무대 위에 세우기 위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때려가면서까지 음악·무용 공부시키는 예는 별로 없다고 한다.
해방 후 여성들을 위한 구호 등이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벌써 실현돼 왔는데 새삼 또 이런 운동이 도입되면 오히려 남성들의 반감만 살 우려가 있지 않을까.
한편 생각해보면 한국여인들 같이 불쌍한 존재도 드물다. 유교의 야릇한 도덕은 아예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굴레만 씌우기에 바빴고 안방에 가두어 두는 것만을 상책으로 알았었다.
그런 유풍은 아직도 남아있어 남편을 잃은 아내는 같이 애를 써 모은 재산도 유산상속에 있어서는 둘째아들의 반밖에 안되고 남편과 헤어지면 자식에 대한 친권행사도 재대로 못하는 등·불합리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도대체 호주권이란 것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한국 하나밖에는 없으니 법을 만들고 재정하고 심의하는 사람부터 머리를 뜯어 고쳐야 할 판인데 그렇게되려면 민도부터 전체적으로 향상되어야하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여교수나 YWCA등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잘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여성출신 법률가들이 많이 배출되어야 하는데 우리 나라에는 현재 여류판사·변호사가 겨우 한 두 사람 밖에 없는 형편이다.
여성 자신이 여성을 업신여기는 풍조도 고쳐져야 한다. 여교장 선생님들이 여교사 채용을 꺼린다. 결근이 많아 수업에 지장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자신이 아플 때는 고사하고 남편이 드러누웠다, 애가 감기가 들었다, 해산을 했으니 쉬어야 하겠다는 등 결근이 잦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야말로 「미스」가 아닌 이상 여성들 편을 들어주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니 알고도 모를 일이다"
평범한 말 같지만 여성은 역시 여성다워야 매력이 있다.
최근 일본을 다녀간 영국여왕의 모습을 보고 느꼈지만 모름지기 여성이란 저렇게 우아해야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기품 있고 여자다운 저런 여인과 함께 사는 「에딘버러」 공이야말로 얼마나 좋을까하고 엉뚱한 생각까지 해볼 정도다.
한가지 생각되는 일은 늘 국제대회에서 낙선만 하는 「미스·코리아」선발 같은 것은 무슨 의미로 하는지 모르겠다. 경마는 폐도 있고 마력증진을 위해 불가결이라 하지만 미인 경쟁도 자주 하면 미인이 탄생한다는 논리인지 모르겠다.
외국여성에 비해 대체 우리 나라 여성들은 말이 많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동창회다, 계다, 소풍이다, 놀이다 핑계도 이유도 많다.
들판에 나갔다 하면 으례 속 치맛바람에 장고·꽹과리를 치고 목청이 찢어져라고 유행가나 부르지 않으면 음담패설에 공동탁주·소주나 들이켜는 추태는 외국에는 없다, 그야 평소에 눌려 갇혀 살았기 때문이라 하지만 정도가 문제지 놀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서구의 문화를 철문화라면 동양을 요 문화라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를 능동적이라면 후자는 수동적이라는 뜻이다. 능동·수동 어느 한쪽만으로는 이즈러진 존재이다. 바퀴모양 두 가지가 다 있어야한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안에서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하겠다. 집에서 어린애 보아주고 마루 걸레질하고 부엌에서 밥그릇 설겆이나 하는 남편 상은 측은하기 짝이 없다. 외국서 그렇다고 여기서도 본받을 필요는 없다. 물 떠오너라 재떨이 가져오너라 하고 손가락하나 까닥 안 하는 남편도 문제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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