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의사가 응급·중환자 진료 거부하겠다니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대한의사협회가 3일 공개한 집단휴진 일정을 보면 심히 우려되는 점이 있다. 바로 24~29일 필수진료 인력을 포함한 전면 파업이다. 필수진료란 게 무엇인가. 바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말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이 찾는 곳이 응급실이고, 큰 수술을 받았거나 중병에 걸린 환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데가 중환자실이다. 이런 데 근무하는 의사들이 파업을 벌이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혹시 실수로 잘못 나온 말이 아닌지 유심히 살펴봤으나 그게 아니다. 의협은 3일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 투쟁위원회 결성’ 보도자료에서 24~29일 필수의료 중단을 포함한 전면 파업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의료계는 2000년 이후 크고 작은 집단휴진을 하면서 응급실·중환자실 진료를 하지 않겠다고 나선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 반대 집단 휴진을 하면서도 이 두 곳은 끝까지 지켰다. 당시 휴진은 지금보다 명분이 더 있었다. 그래도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환자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본분을 부분적으로나마 지키기 위해서였다.

 의사협회는 11~23일 준법진료와 전공의 1일 8시간 근무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기간 동안 응급실과 중환자실 전공의가 8시간 근무 방침에 따르겠다고 병원을 떠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이 두 곳은 전문의가 주도하지만 전공의가 없으면 밀려 드는 환자를 처리하지 못한다.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덕분에 수가가 대폭 올랐다가 그 이후에는 깎이거나 별로 오르지 않았다. 수가 인상 효과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의사 파업은 의사 불신을 낳는다. 불신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일부 환자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한다. 의사들이 진료권을 무기로 삼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응급실·중환자실 진료 거부는 감당하지 못할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부당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는 모양이다. 의협은 당장 철회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