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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야권 신당, 분명한 노선과 정체성을 보여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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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은 세력 통합을 선언하는 가장 큰 이유로 ‘약속의 정치’를 내세웠다.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약속의 정치를 실천함으로써 새누리당 집권세력의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약속의 정치, 정당공천 배제는 그 자체로 도덕적이고 개혁적이다. 하지만 도덕적이고 개혁적인 것만으로 신당 합당의 정당성이 합리화되는 건 아니다. 정치권은 선거 승리와 이기는 정치가 중요할지 모르겠지만 유권자는 야권 신당의 노선과 정체성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하다. 창졸간에 통합 선언을 했으니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김 대표와 안 의원은 자기들이 정치 시장에 새로 출시한 정당 신상품의 본색과 성질이 무엇인지 하루바삐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신당의 노선과 정체성은 당헌당규, 정강정책 같은 보이는 부분과 정치문화, 행동양식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그동안 합리적 보수와 성찰적 진보가 새 정치를 만드는 두 개의 바퀴라고 주장해왔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구체적인 노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온건하고 통합지향적인 색깔이 좌우의 극단과 분열이 지배하는 한국 정치에서 안 의원 나름대로 생명력을 가졌던 이유였다. 안 의원이 보여주고자 했던 중도 노선의 정치는 민주당과 합당한 뒤 소멸될 것인가, 유지될 것인가.

 민주당은 야권 신당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김한길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해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진보·투쟁·강경 세력이 주류인 정당이다. 주로 486 운동권과 초·재선 그룹, 친노 그룹이 당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그룹은 한·미 FTA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제주 해군기지 설치를 반대했다. 2012년 총선에선 야권연대를 명분으로 통합진보당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안철수의 중도 세력과 친노강경의 진보 세력은 신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런 차이점을 하나의 색깔로 조정해야 한다. 이런 우려 때문에 벌써부터 안 의원 측에선 “민주당에서 신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동의하는 사람만 왔으면 좋겠다”라든가 친노강경 쪽에서 “기존 민주당의 정강정책이 흔들려선 안 된다”는 경계론이 나오고 있다.

 유권자는 2012년 대선 야권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에 대해 안 의원과 친노인 문재인 의원 간에 뚜렷한 입장 차가 있음을 기억하고 있다. 안 의원은 “정부 차원에서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고 한 반면 문 의원은 “김정일 위원장이 약속했으니 그대로 재개하면 된다”고 답했다. 김한길·안철수 회동에서 신당의 노선은 경제민주화, 복지 국가, 튼튼한 안보, 평화 통일이라고 천명했으나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특히 대북안보 정책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을 것이다. 야권의 신당 합당이 선거용 급조 정당이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당의 노선과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