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수도「사이공」최후의 날|주월 미국인 마지막 떠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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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이공=외신종합】미국인이 마지막으로 철수한 29일「사이공」의 밤은 분노의 밤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열대폭풍우는 이 절망과 비극의 도시를 한결 비감에 젖게 만들고 있었다.
「사이공」은 이날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든지 마지막 미 해병 철수「헬리콥터」속에 기어 들어가려는 수만 명의 월남인들과 거리를 휩쓸며 약탈에 여념이 없는 청소년「갱」집단·무기를 버리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채 미국 공관 도서과 등 각 기관과 미국인 집으로 난입, 약탈에 가담한 군인과 경찰관 등으로 무법과 혼란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들의 약탈행위가 자행되는 동안 「사이공」거리는 냉장고·「에이컨」·TV수상기·「라디오」각종 깡통식품을 가득 실은 각종 차량들로 붐볐다.
약탈자들은 텅 빈 미 대사관에 남아 있는 자동차들을 완전히 분해, 부속품을 훔쳐 달아났으며 각 기관의 경비원들은「유니폼」을 입은 채 약탈자의 무리에 합세했다. 약탈자들은 심지어「카톨릭」구호단체 본부에서 신부의 법의까지 쓸어 갔다.
또 집을 버리고 도망간 부유한 실업 인들의 상점이나 고관들의 저택에 대한 주민들의 약탈과 방화는「촐론」과「지아딘」구에까지 파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자는 뇌물을 주었고 가난한자는 애 소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미국인들의 자비만을 기대하면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대사관밖에 서 있었다.
『제게는 금이 있습니다. 함께 데려가 주면 20만「달러」를 드리겠습니다.』옷을 잘 차려입은 한 청년은 미국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편「사이공」상공에서는 월남 기들과「헬리콥터」기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시내 중심 가들에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검은 복장의 청년민병대원들이 경비를 맡고 있을 뿐 복무중인 군인과 사찰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29일 밤 시내에 가족을 데리고 있는 군인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것으로 보아 일부 부대들은 이미 지리멸렬되어 해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낳게 했다.
함 상에 옮겨진 월남인 대령 급 장교들과 장성들은 사병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몸수색을 받았는데 한 3성 장군은 가방 속에 금을 넣고 온 사실이 적발되었다. 그런가 하면「C·레이션」·쌀·죽선·담배상자를 갖고 온 사람도 있었다.
「티우」전 대통령을 보좌하여 월남전을 이끌어 왔던 월남 군 총 참모장「카오·반·비에」대장은 이미 해외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새 월남 군 참모총장「구엔·반·민」소장은 직접 방송연설에 나서 월남 군은 자존심을 가져야 하며「구엔·반·티우」전 대통령과 같이 도망치는 생쥐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항부근에서 한「프랑스」신문기자를 검문한 월남 군 병사들은 이 기자가「프랑스」국적이라고 밝히자『좋다, 미국인이었으면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탄손누트」공항에서는 성난 월남경비병들이「헬리콥터」를 타기 위해 미국인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들어오는「버스」들에 발포하면서『우리도 같이 가자』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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