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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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예술가에게는 묘한 기질이 있다. 어느 날 화가「코로」는 거리에서 거지를 만나 상당한 돈을 주었다.「코로」는 한참 후에 다시 그 거지한데 가서 머뭇거리면서『아까 돈이 좀 적은 듯하니 더 줄까』라고 했다는 것이다.「코로」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한 사람은 「라·퐁텐」이었다. 어느 살롱에서 그는 한 청년과 즐겁게 담소를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는 옆의 친구에게『지금 막 헤어진 청년은 어디서 본 듯한데 누구지?』『바로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까.』
「드가」가 한창 어려울 때였다. 딱하게 여긴「말라르메」가 그의 작품을 정부에서 사주도록 운동했다. 이 소식을 들은「드가」는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자기그림을 그렇게 더럽혀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예부 터 돈을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세속적인 것을 등지고 사는 것으로도 되어 있다. 어쩌면 또 예술이란 그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옛날얘기다. 이제는 예술가도 이런 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이번 국전의 심사결과를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짙어진다.
올해로써 두 번째 맞는 신 제 국전의 심사평을 들으면 사뭇 흐뭇해하는 표정들이다. 운도 늘고 질도 고르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응모수가 늘어났다고 꼭 반가와 해야 할 일은 못된다.
어느 예술의 장르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다. 그것이 국전이라는 관문을 용케 통과하기는 매우 어렵도록 되어 있다.
국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잡음은 바로 이런데 있다. 우선 심사위원의 선정이 문제되고, 그리고 심사위원과 당선자사이의 개인적인 정리가 문제되고….
더우이 국전을 통해서 민족예술의 정착을 꾀한다는 것도 사실은 독창적인 예술가에게는 어울릴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국전을 거쳐야만 새로운 화가가 제대로 평가를 받게 되는 우리나라의 화단이 우선 문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예술계의 정체에 대한 책임은 누구보다도 기성화단의 기둥이 되는 사람들에게 있다.
한가지 이번 국전심사에서 다행스런 일이 있다. 대통령상을 탄 두 분이 모두 40이 넘었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자「레만」에 의하면 30대에 독창성이 발휘되는 것은 과학·철학·음악들이다. 소세·현대건축·현대회화 등은 40대 이후에야 발휘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20, 30대의 신인들이 판쳐 오던 국전이었다. 꾸준히 구상력이며 기술을 닦아 온 두 분에게 이번에 최고의 영예가 돌아간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두 주제가 모두「회고」였다는 것이 뭔가를 상징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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