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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공신력 먹칠…경관·범인야합사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경찰간부가 은행사기단과 한통속이 되어 그들의 「뒤를 봐주고」정기적으로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경찰관이라는 신분에 비추에 그 죄질과 수법이 지나치게 악랄했다는 점에서 경찰의 공신력을 크게 먹칠했다.
형사피의자에 대한 불친절·때로는 자백을 받기 위한 엄문이 경찰 공신력의 문젯점으로 지적이 되기는 했으나 경찰이 범죄인과 직접 야합하며 사건을 조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
검찰에 의해 관련 경찰관2명이 구속되고 또 다른 2명이 수배를 받게되자 경찰 측에서는「한 마리의 고기가 물을 흐려 놓은 격」이라고 애써 가벼운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검찰수사관계자는 관련자들의 진술 또는 검찰정보 등 지금까지의 조사로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경찰내부에 상당히 넓게 번져있는 것으로 이 사건은「빙산의 일각」임을 비쳤다. 김학선 경위의 구속보도가 나간 뒤 S상가 상인 수명이 검찰에 전화로 김 경위 등 몇몇 경찰관의 비위를 낱낱이 제보하며 엄벌하도록 부탁까지 했다는 것이다.
김 경위와 은행사기조직의 두목 급인 황봉진이 손을 잡은 것은 68년 가을. 은행사기조직의 시조로 알려진 이모씨(수배)의 소개로 알게됐다고 한다. 당시 이씨는 자기의 조직중 머리가 가장 좋은 황을 『유능한 일꾼』으로 소개, 며칠 뒤 김 경위는 황을 불러내 『사업을 하라』며 자신이 뒤를 봐줄 뿐 아니라 다른 경찰에 잡혀도 무마해준다는 조건으로 사취액수의 15%씩을 자신에게 주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황은 국내에 있는 은행상대 사기조직 30여명 가운데 가장 지능적인 「일꾼」. 지난19년 동안 서울시내 변두리 은행이나 지방의 농협, 새로 생긴 지방은행 또는 국내예금업무절차에 익숙지 않은 외환은행 등을 상대로 보통예금지급전표 또는 원장 등을 위조, 자신이 기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숱하게 범행을 해왔다고 진술하고 있다.
김 경위와 황 두 사람 사이의 이른바 사취액 분배약정은 15%였으나 황은 범행 때마다 사취액을 줄이거나 또는 다른 비용이 필요하다는 이유 등으로 10%안팎씩을 바쳤다고 말했다. 황이 말하는 「다른 비용」이라는 것은 김 경위가 거느리고 있는 4명의 정보원의 생활비 등 뒷바라지 비용. 범죄인들로부터는 「야당」으로, 경찰내부에서는 「PD」로 불리는 정보원들의 범죄인에 대한 행패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수사경찰관보다 더 큰 영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의 진술에 따르면 김 경위가 데리고 있는 4명의 정보원은 서울시내의 다른 경찰정보원들 중에서도 「베테랑」들로, 범죄인들은 그들이 「서라하면 서고」 「뛰라하면 뛰어야」하는 실정이라는 것. 그래서 황 역시 김 경위보다 이들에 대한 대우에 더욱 신경을 써 그동안 김 경위에 건네준 것은 3백60만원에 불과하나 「야당」에게 간 것은 4, 5배가 넘는 액수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경위는 그대로 불만, 항상 더 많은 돈을 요구했고 정보원은 정보원대로 상납 실적이 나쁘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 김 경위의 정보원 중 1명은 돈을 주지 않는다고 황이 작년 말 서울은행 영등포지점에서 있었던 2천만 원 사취사건의 주범이라고 당시 성북경찰서 330수사대소속 최영희 순경과 이병균 순경(수배 중·지난 3월20일 부인에게 권총을 쏘아 중상을 입힌 뒤 사직)에게 제보, 황을 검거케 한 뒤 김 경위에게 연락해 최 순경 등에게 30만원을 주고 풀려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조사에서 황은 지난69년6월 한일은행 소공동지점에서 1천35만원을 사취한 뒤 범죄와 손을 끊고 그동안 모은 돈을 합쳐 서울 성동구 약수동에서 부동산업을 하려했으나 김 경위와 그의 정보원들이 당시 명동에서 있었던 수표날치기사건의 범인으로 거짓 목격증인까지 내세워 남대문경찰서에 고발하는 바람에 6개월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뒤 무죄확정판결을 받고 나왔으며 그동안 탕진한 가산을 보충하기 위해 「죽기로 하고」요행사기에 전념, 검거될 때까지 26회 5천6백만원을 사취했다고 말했다.
그 뒤 황은 김 경위 등과 계속 접촉하다가 지난3월6일 중부경찰서에 검거되었으나 김 경위가 『서울시경에서 취급한 사건의 기소중지 자이니 이첩하도록』지시, 사건을 넘겨받아 중부서에서 받아놓은 9차례에 걸친 은행사기범죄의 자백조서를 모두 찢어버린 뒤 새로 범행을 부인하는 조서를 꾸미는 등 무혐의불기소 처분이 내리도록 엉성한 수사기록을 만들어 송치했다가 검찰의 재 수사로 범행전모가 밝혀진 것.
김 경위는 지난23년 동안 경찰관생활을 해오며 자신의 정보원들을 활용해 도범 검거에 우수한 실적을 올렸다하여 18차례나 표창을 받았으며, 작년2월에는 「포도왕」으로 뽑혀 특진까지 했다는 것이다. 검찰관계자는 범죄인들 사이에서의 김 경위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그 예로 몇년전 어느 유명인이 고급시계를 날치기 당한 뒤 김 경위에게 부탁했더니 몇 시간 안에 되돌려 받은 사실이 있다고 했다. <정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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