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혁하랬더니 … 3조8000억 '요금폭탄' 내민 공기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공공기관들이 3조8000억원 규모의 ‘요금폭탄’ 청구서를 국민에게 내밀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채가 과중하거나 복리후생이 과도한 38개 중점관리 대상 공공기관이 재무구조 계획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꼼수를 쓴 것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방만경영으로 500조원 규모의 빚을 짊어지고, 정부 재정지원 없이는 임직원 월급도 주기 어려운 공공기관들이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려 한 셈이다. 그러면서 내부에서는 돈잔치라고 해도 좋을 ‘복리후생 파티’를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확정한 38개 중점관리대상 기관의 부채감축 계획 및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계획에 따르면 에너지 관련 공기업은 모두 3조8000억원의 요금인상 계획을 내놓았다. 한국전력을 비롯한 전력 분야에서 2조원, 수도요금 3000억원 등이다. 철도와 도로도 각각 7000억원과 8000억원의 요금인상을 재무구조 개선 방안으로 내놓았다.

 기재부는 “요금인상 계획부터 내놓은 것은 아직 강도높은 자구노력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라며 퇴짜를 놓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부채 감축 계획 수행 과정에서 일부 기관은 공공요금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공공요금 자체가 적정한지에 대한 검토와 원가 분석이 선행돼야 하며 일방적인 요금인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재무구조 개선계획 자체가 부실한 기관도 5곳에 달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수자원공사·철도공사(코레일)·철도시설공단·석탄공사는 다음달 말까지 추가적인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5개 기관 가운데 일부는 구조조정을 해도 정상화가 어려울 정도로 부실이 심각하다”며 “민간 기업이라면 청산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석탄공사는 이미 자본을 다 까먹은 상태다. 만성 적자 구조여서 자본잠식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크지 않다. 2012년 931억원 적자였는데 2017년에도 833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석탄공사를 다른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에 통폐합할 방안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선뜻 결정할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어정쩡한 입장은 공공기관 통폐합에 따른 노조 반발 같은 파장을 우려해서다. 142조원의 빚을 떠안고 있는 ‘부채 공룡’ LH 정상화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계획대로 돼도 2012년 466%인 부채비율이 2017년 377%로 줄어드는 데 그친다.

 사정이 이런데도 복리후생비는 물 쓰듯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도로공사는 초등 5~6학년 자녀 영어캠프비 70%를 지원해 주고, 마사회 역시 초·중학생 1인당 스키캠프에 30만원,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영어캠프에 96만원을 지원해 왔다. 코스콤·농수산유통공사·수출입은행은 특목고 학자금을 전액 지원해 왔다. 한국거래소는 본인 사망 조의금만 2000만원을 지급해 왔고, 코스콤은 개인연금 비용도 연간 120만원 지급했다.

 기재부는 이런 복리후생 제도를 대폭 축소·폐지해 38개 기관의 1인당 복리후생비를 평균 137만원 감축하기로 했다. 18개 기관의 부채규모 역시 이행계획 원안보다 2조5000억원 추가로 줄여 2017년까지 42조원의 감축 효과를 얻게 됐다. 그러나 이런 방안이 계획대로 이행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가 개별 기관에 대한 정상화 이행 계획을 확정했지만 실천까지는 한마디로 산 넘어 산이다.

 무엇보다 공공기관들이 여전히 1~2년만 버티면 개혁 바람이 용두사미로 끝날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상빈(경영학) 한양대 교수는 “이번에 손쉽게 부채를 줄일 수 있는 요금 인상 방안을 내놓은 것만 봐도 공공기관의 개혁의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낙하산 인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한 공공기관 사장은 “사장 임기가 고작 3년이니까 직원들이 어차피 사장은 떠날 사람 취급을 하니까 개혁이 어렵다”고 말했다. 매각 대상 자산이 8조7000억원 규모에 달해 헐값 매각이나 대기업 특혜 시비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김동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