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템포」…극의 맥락 끊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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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립극단은 『성웅 이순신』 『남한산성』에 이어 연속 세 번째로 역사에서 취재한 희곡을 공연하고 있다. 73년에 발표된 이 희곡은 『달집』으로 작가적 역량을 확인시켜 준 노경식이 민족의 일대수난사인 임란의 7년 전쟁을 기록한 『징비록』을 극화한 것이다. 작가는 당시 내정·외교·군사 등의 문제들을 유성룡 개인의 눈을 통해 간접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파란 많은 정치가로서의 한 인간이 겪었던 내면적 고뇌와 기쁨, 그리고 우정에 역점을 두고 있다.
본래 2부 13장으로 구성된 대작으로 특별한 극적 기교가 별로 없는 「스트레이트」한 작품이고 공연 역시 원작의 이러한 특성을 그대로 살린 것은 원로급다운 연출자 (이해랑)의 적절한 해석이며 동시에 그의 연극관이었다.
연출자의 말대로 한국 연극이 나이 이미 60을 넘었으면 차차 원숙해져 가야할 때다. 그러나 우리의 무대는 미숙을 면치 못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연출자 주장대로 어른이 즐길 수 있는 연극』과 젊음은 반드시 서로 상반되는 개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번 연극은 그 젊음이, 그 생동감이 부족한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번 공연은 전체를 9장으로 줄이고 「템포」를 유장하게 끌고 갔고 장면전환이 더디어 극의 맥락이 끊기고 「리듬」이 단절되어 있었다. 국립극장 무대의 경우 회전무대 사용이 매우 느리고 불편하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바 있었는데 연출자는 이를 미리 계산에 넣지 못한 듯 하다. 장면마다 「풀·세트」를 설치했기 때문이겠지만 그로 인해 연기자가 「세트」속에 함몰돼 버리는 위험을 방지할 대책도 미리 고려했어야 될 일이었다.
김동원(유성룡역)의 항상 여유있어 보이는 행동과 감동의 기복이 늘 같은 억양으로 처리된 것은 원숙한 연기로 해석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근년에 새로 입단한 젊은 연기자들이 그들 나름의 개성과 연기력을 돋보이게 해준 것만이 앞으로 국립극단을 위해 기대를 모으게 해준다. 【한상철<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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