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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유엔의 북한 인권보고서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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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정훈
대한민국 인권대사
연세대 교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최종 보고서 및 권고안을 지난 17일 제네바에서 발표했다. 불과 1주일 전 일이지만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에 대한 ‘포스트 COI’ 시각은 이미 크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산가족상봉 및 남북고위급회담의 그늘에 가려 COI 보고서의 내용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 국내와 딴판이다.

  COI 보고서의 핵심은 ‘김씨 왕조’ 3대에 걸친 수십 년간의 조직적 인권탄압이 ‘반인도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명시되었다는 점이다. 이 결과는 마이클 커비 북한인권조사위원장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COI 보고서에는 공개처형, 고문, 투옥, 성폭행, 강제 낙태, 외국인 납치, 특정 그룹 박해 등의 범죄 증거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더 나아가 반인도 범죄 중에서도 국제법상 최악의 범죄인 집단학살죄(genocide)의 적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에게 유례없는 강한 경고를 하는 셈이다. 어떠한 면책사유나 시효가 없는 반인도 범죄 및 집단학살죄는 가해자들을 언제라도 처벌할 수 있다.

 COI는 권고사항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북 지도부의 국제형사재판소(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 회부를 제시하고 있다. 안보리의 합의가 필요한 ICC 회부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유엔총회를 통한 특별재판소(ad hoc tribunal) 회부, 즉 플랜 B까지도 생각해 놓았다.

 COI 보고서는 또한 체제 전환 수준의 포괄적인 개혁 요구를 하고 있다. 결국 북한 체제가 변해야 인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북한이 이런 개혁 주문에 응할 리 없으므로 COI는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 원칙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개입 의무를 권장하고 있다. 자국민의 인권을 조직적으로 탄압할 경우 국제사회가 제도적으로 개입해 해당 국가의 국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개념이 바로 R2P다. COI 보고서는 유엔이 리비아·코트디부아르·콩고 사태 등에 개입했을 때 적용했듯이 북한에도 R2P를 적용할 명분이 있고, 또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 및 국제사회의 냉랭한 시선은 북한의 유화 제스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COI 발표를 사흘 앞둔 14일 북한은 ‘상호비방 중단’을 제시하면서 7년 만의 남북고위급회담 합의를 서둘렀다. 북한이 지난해 6월 초에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당국 간 회담을 갑자기 제시한 배경과도 비슷하다.

 이미 국제적 고립 속에서 김정은의 세습 통치가 불안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COI의 권고안이 부분적으로나마 실행된다면 북 지도부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타격은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보츠와나가 지난 19일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를 이유로 수교 40년 만에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한 사건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거침없는 북한 체제 변화 시도는 통일이 앞당겨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 인권을 위해 박차를 가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북한 인권 개선을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인권 개선, 자유·민주주의의 확산을 골자로 한 대북정책의 창조적 패러다임 전환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북한 주민의 기본 인권을 지켜줄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으로 본다.

 인권 보호는 국제사회의 ‘대세’다. COI 권고안에 걸맞은 인권정책을 수립해 통일시대를 대비한 떳떳한 입장을 표명하고, 경제강국·문화강국 창출에 이어 ‘인권강국’으로서의 도약이 시급하다.

이정훈 대한민국 인권대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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