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 이상재 선생의 청년상을 생각한다|YMCA를 통한 청년운동의 지표|전택부<전 YMCA 총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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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내가 YMCA(기독교청년회)에 들어온지도 어느덧 만18년이 되었다. 날짜로 따지면 6천5백70일, 시간으로 따지면 15만7천6백80시간,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금년에 나는 정년이자 회갑을 한꺼번에 맞았다.
그러면 정년이란 무엇인가? 옥편을 찾아서 알아본 즉, 첫째로 머무를 정자 정년, 둘째로 정말 정자 정년, 세째로 늘어질 정자 정년, 네째로 더부룩할 정자 정년이다.
그러면 내 인생은 벌써 60년에 머물러서 끝장이 났단 말인가? 내 수명은 이미 정해져서 소망이 없단 말인가? 나는 이미 늦어져서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인가. 내 주제가 이제 더부룩해졌단 말인가. 어쨌든 나는 오늘부터 18년간이나 몸담아 온 Y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Y를 떠나면서 고 월남 이상재 선생을 생각하게 된다. 선생은 54세 때 예수를 믿고, 59세 때 Y에 들어와 간사가 되고, 63세 때 Y총무가 되고, 그후 명예총무·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Y를 섬기다가 78세에 이승을 떠나셨다. 그때까지 20년간 선생은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Y주변을 빙빙 돌며 Y를 지키다가, Y를 통하여 나라와 겨레에 충성을 다하다가 이승을 떠나셨다.
선생은「Y·맨」이 되기 이 전에는 망국대부의 한을 품고 자결로써 생명을 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선생은 신앙으로 죽음을 극복하고「Y·맨」이 된 그 순간부터는 새사람이 되었다. 이 새사람은 세 가지 상으로 나타났다. 즉 청년상과 예언자상과 야인상이다. 이 관찰은 한국인의 관찰이 아니라 외국인의 관찰이었다.
즉「프래그먼」이란 외국인은『선생은 Y에 들어오자 10년 이상 젊어졌다』고 보고했으며 일본인 총독부 형사는『이상재씨는 조선사람 중 제일 현명하고 거룩한 사람이지만 외모는 산도둑 같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변화된 선생은 보는 사람에 따라 청년상을 지니기도 하고, 예언자상을 지니기도 하고, 야인상을 지니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을 육당 최남선씨는 다음과 같이 시로 읊었다.

<터럭이 희올수록 마음 더욱 푸르신 님 젊음의 구원 조선 찾아 품에 드오실 제 앞옄 봄 끝없는 길에 꽃이 한참 붉어라.>
이 시에서 보면 선생이 늙었다는 인상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구구절절이 젊음이 넘쳐 흐를 뿐만 아니라 생명이 용솟음친다. 늙을수록 완숙한 미가 무르익을 뿐 아니라 소망과 평화가 사람이 넘쳐흐른다.
흔히 청년운동이라 하면 반체제운동이어야 하며, 반문화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가 많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그르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반체제운동과 반문화운동의 밑바닥에는 종교적인 꿈과 이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적인 꿈과 이상은 제외되고 그 외형적인 요소인 청바지·통「기타」·긴 머리·성적불륜·마약 같은 것만이 등장하였으니 그게 탈이다.
어찌 보면 월남 이상재 선생은 일종의「히피」요, 난봉꾼이었다. 하나 선생은 깊이 종교적 꿈과 이상을 가진 채 늙었기 때문에 늙을수록 더 완숙한 경지의「히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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