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인은 정신력·경험 부족 때문|조상연 4단의 조치훈·사까다 전 참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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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일 13년만에 이룩한 정상에의 도전은 그 문턱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천하의「사까다」와 도전 5번 승부에서 결과적으로는 3대2로 뒤지긴 했지만 조금도 실력이 달려서 진 것은 아니었다. 「사까다」와 치훈이를 잘 아는 고단 기사들은 오히려 치훈의 실력이 위에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치훈이가 진 것은 정신력과 경험부족에서 온 것 같다.
6일 밤11시13분 제5국을 끝내고 계 가를 해보니 치훈이가 4집 반이 모자랐다. 치훈은 이미 체념한 듯 무표정하게 국후 검토에 들어갔다. 제4국에서와 같이 억울한 실수는 없었기 때문인지 울음을 참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새벽0시20분쯤 검토가 끝난 다음 혼자 옆방에 들어가 울음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갔을 매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앞으로 그의 기사생활에 큰 경험이 되고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었다. 「기다니」도장에서 치훈의 선생이었던「가지와라」9단은『치훈이가 너무 순조롭게 바둑을 이기고 간단히 선수권을 따는 것보다는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 져서 쓴맛을 보는 것이 더욱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종일 대국을 지켜본 30여명의 한국특파원들은 취재를 잊어 먹고 치훈이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간신히 달래서 4층 임시기자실로 데려가 30분간「인터뷰」를 했지만 치훈은『내가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만 연발하는 것이었다.
10대에 도전 권을 딴 기록을 세웠고 다시 10대에 「타이를」을 따는 전무후무할 기록을 세우려는 마지막 순간에서 패한 것은 경말 아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일본에는 7대기전이 있고 치훈에겐 아직 나이가 있다. 앞으로 3년 안에만 「타이를」을 따도 69년「이시다」9단(당시 6단)이 세운 기세를 앞질러 최연소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번 5번 기를 통해 보면 제1국은 치훈이가 완승을 거두었고 제2국에선 백을 들고 역전승을 거두었다. 제3국은 반대로「사까다」의 완승 국이었으며 제4국에서는 종반까지 결정적으로 유리한 판을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놓치고 말았다.
일본기원 2층 해설 실에는 국이 거듭될수록 「팬」들이 늘어 5국이 두어질 때는 초만원을 이루었고 해설시간도 늘렸다. 또 전회 관의 유선TV「모니터」앞에는 한대에 20∼70명씩 붙어 앉아 끝까지 관전을 했다.
이날 대국 장에는 명인·본인 방「이시다」9단·「가도」8단·「가지와라」9단·「악베」 8단·「후지자와」9단 등 고단 기사들이 몰려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백90이 두어지자 백이 유리하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러나 92, 94로 일순에 대세를 결정하려고 한 것이 패 착이 되고 말았다. 흑95의 괴수를 당해서는 백이 다시 불리해졌다. 92,94는 일단 보류하고 102를 막았으면 유망한 걸 그랬다.
그 이후에는 승부처가 될 만한 곳은 없었다. 상 변에서도 공격을 퍼부었지만「사까다」는 무난하게 수습, 꼬투리가 잡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4집 반의 차이가 났지만「사까다」가 「부자 몸조심」을 해서 그렇지 최선을 다했다면 승부의 차는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동경=조상연 4단기> 소요시간 백 5시간59분·흑 5시간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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