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교장관, 파키스탄서 '공조'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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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11시8분(한국시간 오후 3시8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도심에 위치한 세레나 호텔 2층.

중키에 깔끔한 이미지의 중년신사와 키는 조금 작고 인상 좋은 촌부가 두 손을 꼭 붙잡고 허허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회담장인 탁실라룸 앞에 진치고 있던 각국 기자들이 대체 누군가하고 눈을 껌벅이길 잠시. 두 사람은 기자들에게 미소로 인사하며 회담장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이날 회담의 주인공인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이었다. 제4차 아시아협력대화(ACD)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파키스탄을 찾은 한.중 외교장관 회담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날 양국 대표단은 '공조'를 최대한 과시하려고 작정하고 나온 사람들 같았다. 두 장관은 자리에 앉을 때도 "After you(먼저 앉으시죠)"를 세 번씩이나 반복했다. 나란히 앉아서도 어찌나 소곤소곤 얘기하든지 옆에 서 있던 기자들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두 장관의 입가엔 시종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회담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지난해 양국 간 교역이 900억 달러를 넘고 인적 교류도 350만 명을 돌파했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면서는 한동안 웃음꽃이 그치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리 부장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계속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반 장관은 즉각 "그럴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국 장관은 이날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를 진행했다. 일정상 중국 측 대표단이 오후에 귀국해야 하는 바람에 이날 회담엔 20분밖에 할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두 장관은 "시간을 최대한 아끼자"며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이날 회담을 한.중 양국 대표단의 숙소인 매리어트 호텔이 아니라 일본 대표단 숙소인 세레나 호텔에서 연 것도 의미심장하다. 외교부 당국자들도 "다분히 일본을 의식한 행보"임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한.중 양국이 일본 대표단 숙소에서 보란 듯이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양국 정부는 '공조'라는 표현을 극구 꺼렸다. 공개적으로 공조를 선언하는 것은 되레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 당국자는 "섣불리 공조를 공식화할 경우 역풍이 만만찮을 것이란 게 정부 판단"이라며 "굳이 내놓고 (공조)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슬라마바드=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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